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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의 따뜻한 바둑 이야기] 여성은 바둑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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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의 따뜻한 바둑 이야기] 여성은 바둑의 미래다

입력
2011.06.1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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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절반이 여성이지만 바둑에서는 여성의 역할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지난 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걸린 메달수가 남녀 각각 한 개씩으로 같았지만 아직도 여성과 바둑은 그리 친숙한 관계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한결같이 바둑을 사랑해 온 여성들이 있다. 지난 주말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서 여성바둑인들의 축제 한마당이 펼쳐졌다. 올해로 31회를 맞는 한국여성바둑연맹 회장배 바둑 대회다. 전국 각지의 여성 바둑 동호인 120여명이 모여 그동안 닦아온 가량을 뽐냈다.

남성들에 비해 평균 기력은 낮지만 여성들의 기풍은 매우 공격적이다. 끊는 자리가 보이면 가차 없이 끊고 틈만 보이면 얼른 들여다 본다. 대회장에 펼쳐진 바둑판마다 흑백의 전투가 치열했다. 불계로 끝나야 할 바둑인데도 대부분 계가로 이어진다. 승부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하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역전의 실마리를 찾기 때문이다. 그 순진한 열정이 애틋하다.

지방에서 올라온 회원들이 많아 점심은 모두 앉은 자리에서 김밥과 음료로 때우고 대회를 계속 진행했다. 대진표의 사다리가 위로 올라갈수록 탈락자들은 관전자로 변해 한 수 한 수마다 탄성을 터뜨리곤 했다.

이 날 대회에는 여성바둑계 원로인 신덕순 연맹 고문과 신용주 전 회장이 참석해 후배들을 격려하고 승순선 회장, 김영 부회장(전 여류국수)과 함께 여성 바둑이 걸어온 발자취를 회고했다.

신덕순 고문은 여성연맹의 산파역을 맡았던 창립 멤버다. "1970년대 한국기원이 종로구 관철동에 있을 때 프로 사범님들께 바둑을 배우던 여성 바둑인들이 조그마한 모임을 만든 게 여성연맹의 뿌리입니다. 당시 기원은 항상 담배 연기가 자욱해서 여성회원들이 아주 괴로웠죠. 그래서 우리들만의 방을 하나 갖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어렵게 보증금을 모아 한국기원에 작은 둥지를 마련했어요. 거기서부터 시작해 오늘 이렇게 활짝 꽃을 피웠으니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신용주 전 회장은 일본에서 활동 중인 류시훈 9단의 모친이다. "현재 연맹 산하 전국 28개 지부에 3,000여 명의 회원이 등록돼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여성 바둑인들이 바둑계에서 대체로 수동적인 입장이었지만 올해부터 사단법인으로 새 출발했으니 앞으로는 스스로 우리 길을 찾아갈 겁니다. 남자들을 앞서가진 못할 망정 뒤처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여류 국수를 지낸 김영 부회장은 30여 년 전 바둑계의 아이돌 스타였다. "바둑 행사 때문에 지방에 가면 여류 국수가 왔다고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그 때는 참 정도 많고 바둑의 향기가 짙었던 것 같아요. 결혼 후 바둑과 다소 멀어졌지만 이제 아이들도 컸으니 지난 날의 열정을 되살려 볼 생각입니다."

"회장배 대회가 벌써 31년째입니다. 그동안 여러 선배님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여성바둑의 명맥이 계속 이어져 온 거죠. 이제는 바둑에서도 여성들이 당당히 나서야 할 때입니다. 여류 프로가 40명이나 되고 초등학교 방과후 바둑 수업의 강사들도 대부분 여성입니다. 또 바둑 영재들은 모두 엄마들이 키우지 않습니까. 아직 여성 바둑계의 역량이 미흡하지만 앞으로 열심히 발로 뛰어서 좋은 대회도 많이 만들고 보급 활동도 많이 할 겁니다." 승순선 회장의 다짐이다.

바둑은 대개 아버지가 권하지만 아이 손을 잡고 바둑 교실이나 도장에 다니는 건 엄마 몫이다. 여성이 한국 바둑의 미래를 결정하는 셈이다. 여성 바둑인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자.

김종서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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