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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영화는 왜 안되나

입력
2011.06.1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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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가 14~15일 영화인대토론회를 열었다. 한국영화 재도약을 위해 영화인들의 지혜를 모으는 자리였다. 첫 주제가 ‘글로벌 시장개척’이었다. 때마침 K-POP 가수들이 프랑스 공연에서 선풍을 일으킨 직후여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과 반성이 나왔다. “K-POP은 유럽에서도 되는데 영화는 왜 안 되나.”

답은 자명하다. K-POP에는 있는 것이 한국영화에는 없다. 모든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 K-POP도 예외나 우연이 아니다. 이런저런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결국은 하나다. ‘상품’자체의 글로벌 경쟁력이다. 음악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춤과 노래, 가수들의 외모와 무대연출까지 포함한 ‘총체적 이미지’이다.

K-POP 성공은 ‘기획 콘텐츠’

K-POP의 음악은 감각이 새롭다. 리듬은 강약과 높낮이, 빠르고 느림, 무거움과 경쾌함을 적절히 섞어 몸의 율동을 자극한다. 일상의 대화처럼 흘러가는 노랫말은 지구촌 젊은이들의 가치와 심리를 솔직히 드러낸다. 가수들은 뛰어난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 노래만 잘 부르는 것이 아니다. 열정적인 춤과 함께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연출해 팬들을 노래와 춤 안으로 끌어들여 하나가 된다.

음악은 그들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여러 가수들이 무대에서 나누고, 객석과 나눈다. 팬들은 에서처럼 가만히 앉아서 일방적으로 듣고 감동하는 수용자가 아니라, 함께 즐기는 친구가 된다. 한동안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배우들의 열정과 강한 감정의 표현들을 한국영화에서 발견하고 빠져들었듯이, 이런 새로움과 차이가 K-POP을 유럽에까지 퍼지게 했다.

이런 점에서 K-POP은 아주 잘 계산해 만든 세련된 ‘기획상품’이다. 영화로 치면 뛰어난 감독이 만든 작가주의 영화가 아니라, 1990년대 인기를 모았던 기획영화인 셈이다. 기획상품이라고 모두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K-POP은 철저히 준비하고, 엄격한 관리로 품질을 높였다. 그것을 위해 “노예계약, 혹사”라는 비판 속에서도 잔인할 만큼 길고 힘든 연습생제도로 인재를 발굴하고 키웠다. 무분별한 복제를 피하기 위해 제품의 차별화를 모색했고, 시장 맞춤형 상품전략을 구사했다.

K-POP 성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존재는 이수만, 박진영, 양현석 트리오이다. 기획사 CEO인 이들은 누구보다 대중가요를 잘 아는 가수 출신이다. 음악으로 끝까지 승부한다.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콘텐츠를 함부로 팽개치지 않는다. 힘들어도 외부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히 음악에만 재투자한다. 자기만의 상품을 지키기 위해 심지어 정부의 지원조차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계는 어떤가. 모험과 열정도 없고, 전략도 없고, 목숨 걸고 한국영화의 부활을 짊어질 리더도 없다. 한류거품 붕괴의 참담한 추락을 겪고서도, 글로벌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없다. 아니 고민을 할 수도 없고, 해도 소용없다. 이미 한국영화는 대기업 자본의 노예가 됐고, 모든 한국영화는 다양성과 모험보다는 유사와 안정을 바라는 그들의 기획상품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투자도, 제작도, 배급도 없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영화계의 이수만이랄 수 있는 강우석마저 무너지고 있다.

한국영화 침체는 구조적 문제

그들의 우산 속에 들어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저작권까지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비를 맞고 있는 많은 영화인들이 틈만 나면 정부가 지원을 더 해야 한다고 앙앙대지만, 정부 역시 글로벌화에는 대기업이 유리할 것이란 착각에서 몰아주기에 빠져 있다. 충무로에는 이제 자기 생각대로 영화 만들 여건도, 영화로 번 돈 영화에만 다시 투자할 영화인도 없다. 부가시장과 한국영화의 글로벌화에도 관심 없다. 저작권을 빼앗겼으니 더 이상‘내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제2의 한류’를 기대하는 것은 허망하다. 5,6년 전부터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 감독이 닦아놓은 한류의 교두보를 닫고 K-POP 가수들이 유럽에서 힘차게 뛰어오르는 것을 구경만 할 수밖에 없다. 돈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다.

이대현 논설위원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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