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South China Sea)의 영유권 분쟁이 다시 불붙었다. 중국과 베트
남 필리핀 대만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이 영유권을 다투는 난사군도(南沙群島)가 중심이다. 난사군도 분쟁은 2차 대전 이후 줄곧 이어졌고 1970년대와 80년대 중국과 베트남의 무력 충돌까지 있었지만 대체로 물밑에 잠복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미 1960년대부터 막대한 해저 석유자원이 확인된 난사군도를 둘러싼 갈등은 중국의 힘이 커지고 자원 쟁탈전이 치열해지면서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전략적 움직임까지 두드러져 한층 복잡한 양상이다.
■영국명 스프래틀리 군도(Spratly Islands)인 난사군도는 필리핀 팔라완 섬과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그리고 베트남 사이에 있는 섬과 암초로 이뤄졌다. 방대한 넓이의 이 해역에는 주로 산호초로 이뤄진 섬과 암초 3만여 개가 있지만, 서쪽 해상의 비교적 큰 750개 섬ㆍ초(礁)를 난사군도라고 한다. 동쪽은 산호초가 밀집해 항행이 어렵다. 이 가운데 높이 3~4m에 불과하지만 그런대로 모습을 갖춘 섬은 9개뿐이고, 가장 큰 북쪽의 타이핑 섬(太平島)만 마실 물이 있는 유인도이다. 타이핑 섬은 대만이 점유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1968년 처음 석유가 발견됐다. 그 즈음 잘 나가던 필리핀이
잽싸게 파가사 섬 등 3곳에 군을 주둔시키고 영유권을 선언했고, 1976년 본
격 유전 개발에 성공했다. 이 유전은 필리핀 석유소비량의 15%를 생산하고
있다. 필리핀 다음으로는 1973년 베트남, 당시 월남이 남쪽 스프래틀리 섬
등 5곳에 군을 파견, 영유권 다툼에 뛰어들었다. 두 나라 모두 미국과 동맹
관계이던 점을 주목할 만하다. 필리핀 유전 개발에 미국 석유메이저가 참여
한 것은 당연하다.
■중국은 1974년 하이난성(海南省)에서 가까운 시사군도(西沙群島)에서 월
남 해군과 교전을 벌여 군도 전체를 장악했다. 미군과 월맹, 북베트남은 짐
짓 중립을 취했다. 그러나 1988년 중국과 베트남은 난사군도에서 충돌, 함
정과 병력 수십 명씩을 잃었다. 그 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며
순찰을 강화하고 베트남 등의 석유 탐사를 방해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베트남과 필리핀이 강하게 맞서는 것은 미국의‘동남아 복귀’와 무관치 않다. 다만 무력충돌 우려는 성급하다. 중국과 베트남의 난사군도 유전개발은 모두 미국 기업이 맡고 있다. 그래서 협상 무대에 앞서 으레 벌이는 신경전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m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