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16일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구간에 대한 추가 감세 철회'를 당의 입장으로 정리한 것은 '부자 정당'이미지를 덜어내기 위한 선택이다. 무엇보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고전할 것이란 전망이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서민 표를 다분히 의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감세 정책은 MB노믹스(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이다. 야권과 진보진영 등은 이를 '부자 감세'라고 낙인 찍었다. 현정부 들어 추진한 법인세와 소득세 세율 인하와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과세 축소 등의 혜택이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집중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상당수 한나라당 의원들이 '여당으로서 MB노믹스를 지키느냐'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하는 정당의 모습을 보이느냐' 사이에서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이날 의원총회 결과에 대해 "경제지표는 좋아졌지만, 경제 성장이 서민에게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을 의원들이 깊이 인식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4∙28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뒤 당의 주도권이 쇄신파가 속한 신주류로 넘어가면서 한나라당의 추가 감세 철회 결정은 이미 예고됐다고 볼 수 있다.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5월 원내대표 경선 때 추가 감세 철회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됐고, 이후 당내 설문조사와 의원총회 등을 통해 당내 여론을 만들어 왔다. 김성식 정책위부의장 등 쇄신파는 "추가 감세 철회로 생기는 약 10조원의 재원을 보육과 일자리 창출 등 서민 경제 살리기를 위해 써야 한나라당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논리로 보조를 맞추었다. 추가 감세 철회 결정은 한나라당 쇄신파가 주도해 온 '좌 클릭 정책'의 상징인 셈이다.
한나라당은 추가 감세가 기업 투자 위축이나 기업 경쟁력 저하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보고 보완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당내에선 임시투자세액공제(기업 설비투자에 대한 세금 감면 제도)의 일몰 시한을 연장하거나, 고용과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는 기업에 한시적 조세감면 혜택을 주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나성린 의원 등 감세 찬성파 의원들은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구간 신설'을 대안으로 꼽는다. 예컨대 소득세의 경우 '소득 1억2,000만원 이상'에 해당하는 최고구간을 새로 만들면 현행 정부 방침에 따라 감세를 약속한 '8,800만원 이상' 구간 소득자 중 일부가 감세 혜택을 볼 수 있다는 논리다. 보완책 마련은 당 정책위와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의원들에게 맡길 방침이다.
한편 한나라당의 결정에 대해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변인은 "감세를 철회한다면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당론 채택이 아니라 의견을 모은 정도로는 한나라당이 과연 정말 추진할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진정성이 있다면 9월 정기국회까지 기다리지 말고 즉각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진정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면 부자감세 철회뿐 아니라 부자 증세를 얘기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진보신당도 "현정부 출범 후 이뤄진 소득세ㆍ법인세 및 종부세 감세도 원상 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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