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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내 업소'를 가진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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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내 업소'를 가진 공무원들

입력
2011.06.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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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쯤 전의 일이다. 구청 공무원인 친구를 퇴근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는 일이 좀 남았는지 "이따가 내 업소에 가서 한 잔 하자."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공무원이 술집을 운영하나? 위생과 공무원이 그래도 되는 건가? 알고 보니 '내 업소'란 '내가 관할ㆍ감독하는 업소'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업소는 대단한 곳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날 거기에서 술을 한 잔 했다. 당연히 술값은 그가 내지 않았다.

사적 이득과 집단적 편익 추구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굳이 나를 불러 대접한 이유는 아마도 뭔가 신문에 기사를 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른다. 그날의 행동거지로 보아서는 공무원 생활을 옳게 잘 하고 있을 것 같지 않다. 술집 주인과 공무원과 기자의 먹이사슬을 실제로 경험한 일이었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생각과 처신이 바르지 못한 공무원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이나 관할하는 시설ㆍ업체를 자기 것이거나 자가용인 것처럼 착각한다. 공개념이나 봉사정신과 거리가 먼 의식과 행태가 부정부패와 비리를 낳고 사회 전체를 흐리게 만든다.

요즘 연일 공무원들의 부정과 비리가 보도되고 있지만, 전혀 새로운 현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국토해양부처럼 규제와 인허가 권한을 많이 보유한 부처의 공무원들이 저지른 비리에 대해서는 으레 그러려니 해온 게 사실이다. 공무원사회 일각에서는 공직기강을 다잡겠다는 정부의 다짐에 대해 '또 임기 말이 다가왔나 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걸린 사람은 재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퍼져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의 말대로 공직자들의 비리는 더 은밀해지고 나쁘게 발전한 부분도 있다. 전통적 전근대적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에다 인허가라는 무기까지 갖춘 공무원들은 민간인들이나 산하기관과의 관계를 갑과 을의 관계로 만들어 사적 이득을 취하고 집단적 편익을 구하고 있다.

정직하게 일하는 공무원들은 억울하겠지만, 이런 악습은 정밀한 감시ㆍ징계 시스템을 통해 타파할 수밖에 없다. 행정안전부가 전관예우 추방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국민권익위원회가 공무원 청렴 확산을 위한 법제화 방침을 밝힌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부정과 비리는 정교한 시스템을 갖춰 진화하는데 감시ㆍ감독체계는 느슨하거나 함께 오염돼 버리면 공직기강 확립이나 공정사회 건설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수밖에 없다.

권익위가 마련한 '공직자의 청탁 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안'은 청탁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보고하는 청탁등록시스템을 운영토록 하고 있다. 또 공직자가 가족이나 지인에게 특혜를 준 경우 금품을 받지 않았더라도 징계할 수 있게 함으로써 형법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소소한 불법행위도 징계하는 근거를 만들었다. 제대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지만, 요즘 분위기에서 공직자들이 이런 법안을 무조건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말했듯이, 국민이 볼 때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는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원래 정권의 임기 말이 되면 공직기강이 느슨해지고 다음 정권을 의식한 정치권 줄 서기ㆍ줄 대기가 심해진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이다. 게다가 올해 안에 전체 공기업의 절반 가량인 99곳의 장이 교체될 예정이어서 공직사회가 더 어수선해지거나 더 해이해질 개연성도 크다.

정권 성패를 걸고 부패 척결을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공기업 인사를 공정하게 해야 한다. 관료 출신보다는 대거 기업인 위주로 바꾸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출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다.

최근 삼성은 또 한 번의 혁신을 하고 있다. 정부가 삼성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민간으로부터 "낙제점은 아니다"라는 평가를 듣는 정도로는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없다. 전력을 기울여 나라와 공직사회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막판에 두드러진 공직사회 부정부패의 척결에 성패를 걸어야 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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