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신화와 문명에서 절대적 중심이었던 태양, 그 영향권으로부터 722㎏짜리 인간의 창조물이 처음으로 벗어나고 있다. 지구를 떠난 지 33년 9개월만이다.
미지의 외계를 향해 지구로부터 가장 먼 곳을 항해하고 있는 인류의 척후병, 보이저1호가 이미 성간 공간(항성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주 공간)으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네이처 온라인판이 15일 보도했다. 1977년 9월 5일 타이탄3 로켓에 실려 미국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기지를 출발한 보이저 1호는, 30여년동안 시속 6만1,155㎞의 속도로 175억㎞를 날아 현재 태양권이 끝나는 경계면인 태양권계면을 통과하고 있다.
태양권의 끝에 다다르다
'바깥'으로 나가는 경계의 풍경은 고요했다. 과학자들의 예상과는 달랐다. 보이저1호가 보내온 데이터를 분석한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소 스타마티오스 크리미기스 교수팀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론에서는 태양권계면에서 태양풍(태양으로부터 방출되는 입자의 흐름)과 성간풍(별과 별 사이 우주공간의 입자의 흐름)이 만나 격렬하게 반응할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네이처에 실린 크리미기스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태양풍의 입자는 태양권계면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보이저1호가 태양으로부터 방출된 양성자의 속도를 계산해 보니 지난 3년 사이 시속 14만9,669km에서 0으로 떨어졌다. "태양계 바깥에 '무풍지대'가 존재한다"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설명했다.
크리미기스 교수는 "우리는 벌써 태양계를 벗어나 놓고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무도 지금 보고 있는 것 같은 모델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네이처에 밝혔다.
미지의 세계 드러나다
보이저1호는 본래 태양계 바깥쪽의 거대 행성들인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탐사하기 위해 발사됐다. 1호는 2호보다 한 달 늦게 발사됐지만, 지름길 궤도를 항해하도록 설계돼 발사 18개월 후 2호를 앞지르고 1979년 3월 5일 2호보다 4개월 먼저 목성을 통과했다. 80년 11월 12일 토성을 지났고 89년 임무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보이저1호는 뒤돌지 않고 우주를 향해 나아갔다.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난 뒤 외계의 지적 생명체와 조우할 경우를 대비해 베토벤의 음악 등 외계인들에게 보내는 지구인의 메시지도 싣고 있다. 태양권에서 벗어나면 어느 천체의 중력권에 붙잡힐 때까지 보이저1호는 관성에 의해 계속 어둡고 차가운 우주로 나아갈 운명이다. 연료인 플로토늄238이 바닥나는 2020년께까지, 보이저1호는 아무도 가보지 못한 태양계 바깥의 모습을 지구로 타전할 것이다.
지난 30여년 간 보이저1호가 보내온 각종 영상과 데이터는 태양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넓혀주었다. 1980년엔 최초로 완벽한 태양계의 모습을 촬영했다. 목성에도 토성과 비슷한 고리가 있다는 사실, 토성의 고리가 1,000개 이상의 가는 선으로 이뤄졌다는 사실, 목성의 위성 유로파가 얼어붙은 바다로 덮여 있다는 사실 등이 모두 보이저1호가 밝혀낸 것들이다. 크리미기스 교수는 CSM와의 인터뷰에서 "우주는 우리의 야생적인 상상력보다 훨씬 더 독창적인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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