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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경연구회 회원전 '느림과 정치미학의 정수, 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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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경연구회 회원전 '느림과 정치미학의 정수, 사경'

입력
2011.06.16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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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寫經)은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을 손으로 베껴 쓰는 일이다. 경전 머리그림인 변상도(불경 내용이나 불교 설화 그림)도 사경한다. 사경은 온마음을 바쳐서 하는 경건한 수행이기도 하다. 끈기와 인내가 없으면 할 수 없다.

전통사경 전문가 김경호(49)씨의 ‘감지 금니 아미타경 변상도’는 세로 20.4㎝ 가로 21.4㎝의 작품이다. 0.1㎜ 붓끝에 금니(아교를 녹인 물에 갠 금가루)를 묻혀서 그렸다. A4용지보다 작은 그림을 완성하는 데 매일 6~8시간씩 90일이 걸렸다. 워낙 세필이라 숨 한번 잘못 쉬거나 눈만 깜박여도 선의 굵기가 달라지고 획이 흔들린다. 실수를 하면 끝장이다. 고치려면 아교가 들러붙은 종이를 긁어내야 하는데, 그러면 종이가 상해서 못 쓴다.

사경에 가장 적합한 환경은 기온 35도 전후 습도 90% 이상이다. 붓털 한두 개 끝에 묻은 아교는 3~5초면 굳어 버린다. 그러면 금가루가 종이에 묻지 않는다. 붓끝이 천천히 굳게 하려면 습식 사우나나 다름없는 방에서 작업할 수밖에 없다.

그는 “사경은 일반 서예작품이나 불화에 비해 수백 배 공력이 든다”며 “인욕과 선정, 정진의 수행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재료 준비와 작품 마무리에도 지극 정성이 필요하다. 아교를 중탕해서 녹이고, 아교물을 종이에 발라 마른 다음 다시 바르고 말리기를 세 차례, 금가루 은가루를 여러 번 정제하고 수시로 붓을 빨아 불순물을 제거하고, 사경을 마치면 표면을 문질러 광을 낸다.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채색이 탁해져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그에게 전통사경을 배우는 사람들이 모인 한국사경연구회가 ‘느림과 정치(精緻)미학의 정수, 사경’이라는 제목으로 28일까지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전시실에서 제6회 회원전을 열고 있다. 국내 하나뿐인 사경단체다. 회장인 그와 회원 80여명이 출품한 100여점을 볼 수 있다. 불경 사경이 대부분이고, 유교 경전과 성경 사경도 있다. 저마다 수행하는 자세로 완성한 것들이다.

우리나라는 불교가 공인된 삼국 시대 이래 불교 사경이 발달했다. 고려 시대에는 국가 기관으로 원나라에 사경 전문가 수백 명을 파견해 금자ㆍ은자 대장경을 만들어 줄 만큼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으나 숭유억불 정책을 편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찬란했던 전통을 잃어버렸다. 현재 사경 문화재는 국보 40점, 보물 160점이 있다.

그는 조선 중기 이후로 맥이 끊긴 전통사경을 되살린 주역이다. 지난해 전통사경 분야의 유일한 기능전승자로 지정됐다.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생 시절부터 불경을 베껴 쓰던 그가 본격적으로 전통사경에 매달린 지는 20년이 넘었다. 사라진 것을 익히려니 가르침을 구할 데도 없어서 어디에 사경 유물이 있다는 소리만 들으면 찾아가서 보고 옛 문헌을 연구하며 독학을 했다. 전통사경의 최고봉인 고려사경 기법을 되살리는 데 전념해 왔다.

이번 전시는 고려대장경 발원 1,000년을 기념해 마련했다. 1011년 제작에 들어간 초조대장경과, 초조대장경 경판이 소실된 뒤 다시 만든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뛰어난 목판인쇄술과 금속활자 개발도 사경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대장경을 판각하려면 먼저 사경을 해서 모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의 전통사경은 1,700년의 장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예술인데도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한다. 최근 그는 성경 사경, 코란 사경 등 외국의 사경도 연구하고 있다. 전통사경의 기법과 요소를 좀더 풍요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어서다. 외국에서 전시와 강연 등을 통해 전통사경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도 앞장서 왔다. 내년에는 뉴욕에서 초대전을 가질 예정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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