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하모(67)씨는 샤워하던 중 갑자기 오른쪽 팔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말이 나오지 않아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지만, 다행히 무의식 중에 잡은 욕실 비품장이 떨어지는 바람에 가족들이 발견해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왼쪽 뇌혈관이 막힌 뇌경색증이었다. 곧바로 병원 뇌졸중클리닉 의료진에게 환자 발생 문자메시지가 전송됐고, 전자 의무차트에 뇌졸중 환자라는 주황색 알림창이 떠 각종 검사와 치료에서 최우선 순위임이 표시됐다. 긴급 호출된 의료진이 응급실 도착 40분 만에 혈관을 막은 혈전을 없애는 혈전용해제를 하씨의 팔뚝 혈관에 주사했다. 나흘 뒤 하씨는 퇴원했다. 좁아진 경동맥을 넓히는 스텐트 시술을 보름 뒤에 받기로 하고서다. 전국 뇌졸중 의료기관 진료평가 3년 연속 1등급을 획득한 강남세브란스병원 뇌졸중클리닉의 팀장, 이경열 신경과 교수에게 뇌졸중 예방과 치료법을 알아보았다.
-뇌졸중은 어떤 질환인가.
"쉽게 말해 뇌로 가는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진 것이다. 뇌는 1.4kg(성인 기준)로 무게는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심장에서 나오는 혈액의 15% 이상과, 하루 신체 에너지의 20% 이상을 필요로 할 정도로 하는 일이 많다. 뇌에는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이 엄청난데, 이 가운데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해당 부위의 뇌가 담당하던 기능을 잃는다. 20년 전만 해도 출혈성 뇌졸중이 많았다. 요즘은 혈관이 막히는 경색형 뇌졸중이 대부분이다."
-경색형 뇌졸중이 늘고 있는 이유는.
"짜게 먹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경색형 뇌졸중의 가장 큰 원인 질환인 죽상동맥경화증은 동맥혈관 벽 사이의 벌어진 틈으로 콜레스테롤과 염증세포가 쌓이면서 혈관이 좁아지고 딱딱해진 것이다. 고혈압과 고지혈증, 당뇨병, 흡연 등이 원인이다. 동맥혈관 내에 기름이 끼면 그 부위를 통과하는 혈액과 반응해 혈전이 생긴다. 죽상동맥경화증이 진행되면 동맥은 더 좁아지고 딱딱해져 혈액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고, 혈전이 혈관 통로를 막아 뇌경색이 생길 수 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심장질환, 특히 심방세동이라는 부정맥 환자가 늘어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심방세동이 생기면 심장에 혈전이 잘 생기면서 뇌동맥 혈관을 막으면서 뇌경색을 일으킨다."
-뇌졸중 치료에 시간이 왜 중요한가.
"뇌는 신경세포가 뭉쳐 있어 20초만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도 마비된다. 4분이 넘으면 막힌 혈관 주변의 뇌세포가 죽기 시작한다. 혈관이 막혀도 주변 다른 혈관에서 산소와 영양분을 대체 지원해 줘 일부 뇌세포는 버틸 수 있지만 그 시간도 3시간 이내다. 3시간이라는 '골든타임'을 넘기면 뇌신경이 완전히 죽어 사망하거나 장애가 된다. 2009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뇌졸중환자가 응급실에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1시간이다. 대한뇌졸중학회 조사에서도 3시간 내 골든 타임 내에 병원에 도착한 환자는 29.3%에 불과했다. 골든타임 내에 도착한 환자와 그러지 못한 환자는 치료결과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발병 3개월 후 일상생활에 정상 복귀한 비율을 비교해 보면, 3시간 내 치료한 환자는 6~12시간 내 치료한 환자보다 26%, 12시간 이상 경과 환자보다 45%나 높았다. 이 때문에 우리 뇌졸중클리닉은 지난 2003년 환자 도착 후 응급약물 투여까지 79분이 걸리던 것을 최근 40분 내로 줄였다."
-그럼 어떤 증상이 나타날 때 병원에 가야 하나.
"뇌졸중은 단일 질환으로 국내 사망률 1위인데다가 후유증도 커서 평소 전조 증상을 잘 파악해야 최악을 모면할 수 있다. 어떤 혈관에 문제가 생겼는지에 따라 증상이 다양하지만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마비 증상, 말이 어눌해지거나 나오지 않는 실어증,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시야장애, 어지럼증과 보행장애 등이 있다. 뇌출혈이라면 전에 없던 극심한 두통과, 경우에 따라 구토와 의식장애가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뇌졸중은 어떻게 치료하나.
"뇌경색은 혈전용해제를 정맥혈관에 주사해 뇌혈관을 막은 혈전을 녹여 혈류를 원활하게 한다. 그러나 골든타임을 넘겼거나 정맥에 투여한 혈전용해제로도 효과를 얻지 못할 때에는 허벅지 동맥에 특수 도관을 넣어 막힌 뇌혈관 부위에 혈전용해제를 투약하거나 스텐트를 끼워 넣어 넓히는 시술을 하기도 한다. 출혈성 뇌졸중이라면 수술로 출혈을 제거한다. 출혈이 적거나 너무 심해 뇌가 심하게 손상됐다면 약물을 이용해 흘러나온 혈전이 몸에 흡수되도록 한다. 동맥꽈리가 터졌다면 특수 클립으로 꽈리를 묶거나 다리 혈관을 통해 꽈리를 막는 특수코일을 넣는 시술을 하기도 한다. 뇌졸중은 재활치료도 중요하다. 발병 후 6개월이 뇌 회복에 가장 중요한 시기이므로 전문 재활치료 기관에서 신체기능을 최대한 회복해야 후유증이 남지 않는다."
-결국 예방이 중요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뇌졸중 발병의 가장 큰 요인은 나이다. 55세부터 10년 단위로 발병률이 2배 이상 높아지며, 남성이 여성보다 더 잘 생긴다. 고혈압과 당뇨병이 있으면 뇌졸중 발병률이 최대 4배 이상 높다. 심장질환과 고지혈증, 흡연자, 비만 등도 주요 발병 요인이다. 또한 한번 뇌졸중을 앓았다면 재발할 확률이 10배 가량 높아지므로 방심은 금물이다. 최근에는 진단기술이 발달해 검진을 통해 뇌혈관의 상태와 동맥꽈리와 같은 이상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뇌혈관에 이상이 있다면 아스피린과 같은 혈전예방제를 먹고, 뇌혈관이 심하게 좁아졌다면 스텐트 시술로 미리 넓혀 놓으면 뇌졸중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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