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운암 한석지(1709~1803)의 을 읽었다. 조선 영ㆍ정조 대 인물이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식인이다. 함경도 함흥 시골에서 나고 자라 27세에 생원시에 합격한 후 과거를 포기한 채 공부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30대 초반 잠시 성균관에 입학하느라 서울에 올라온 일을 제외하고는 다른 학자들과의 교류나 인연 또한 많지 않았다. 이처럼 전언(傳言)이나 활동 내력이 전무한 것은 그다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그의 학문 세계를 알려주는 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물론 몇몇 선학들이 한석지에 관심을 기울였는바, 사상의학의 창시자인 동무 이제마의 학설에 영향을 주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필자가 관심을 가진 이유는 조선시대, 그것도 주자학을 가장 강력한 국가 철학으로 부활시킨 영ㆍ정조 대에 주자학을 매우 강도 높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한석지는 주자학의 실체는 사실 불교인데 유학의 옷을 갈아입은 가짜 학문이라고 비난하고, 인간의 본질을 전연 잘못 파악하였다고 주장했다.
주자학은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마음 공부를 제일의 방도로 삼았다. 식색(食色)의 욕망, 장수와 부귀 혹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감정이나 재화와 즐거움을 좋아하는 감정 일체를 모두 욕망으로 규정하고, 욕망을 억제하거나 아예 뿌리를 뽑아 근원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한석지는 욕망이 바로 인간의 본성인데 본성과 감정의 근원을 뽑아내고 잘라내서 나쁜 감정을 막겠다고 한다면, 인간의 본성을 제거하여 고요한 채 아무것도 없기를 바라는 것인데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비난하였다.
운암은 인간을 욕망의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인욕(人欲)을 곧바로 천리(天理)로 규정하고, 주자학에서 극도로 기피하는 이익(利)의 추구 역시 의로운 이익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자신의 주장은 맹자의 뜻이라고도 했다. 그는 감정에 사사로움이 없다면 욕망도 어질다(仁)고 할 수 있고, 행함에 편벽됨이 없다면 이익의 추구가 바로 의로움(義)이라고 보았다.
사실 주자학은 인간의 마음을 순선한 성(性)과 그렇지 않은 정(情)의 조합으로 규정하고, 인간이 이기적이며 선하지 않은 행동이나 감정의 원인을 기질의 차원으로 귀결시킨다. 따라서 욕망을 억제하고 순선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은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부여 받은 하늘의 명령(天命)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으로서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성인의 도덕적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저 채찍질할 수밖에 없는 모순에 빠지게 된 것이다.
현실에서 모든 인간에게 성인의 삶을 강요하는 것은 성인의 길로 인도하기보다 도리어 크나 큰 고통과 좌절을 선사하고 위선에 안주하게 만들기 쉽다. 인간의 기준을 성인의 도덕성으로 정의한 후 모두에게 금수가 아닌 성인이 되길 바란다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이에 운암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전제 위에서 새로운 도덕 실천을 계획하였다. 이기적 속성을 제거해야 할 악으로 규정하는 대신 인간의 본질로 정의한 후 세상의 질서를 모색하였던 것이다. 변화하는 조선후기에 맞는 과감한 문제 제기였다.
경화(京華)의 사족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제대로 인정받기 힘들었던 18세기에 운암은 세상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용기 있게 제시했다. 당시 세상은 그의 문제 제기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가 누구보다 그 시대를 정확하게 보았음을 잘 안다.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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