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은행의 밀월 관계가 점점 더 돈독해지고 있다.
정부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워왔던 ‘매파’이성태 전 한은 총재가 물러나고 MB정부 초대 경제수석 출신의 김중수 현 한은 총재가 취임하면서 정부와 한은은 역사상 가장 우호적 관계를 이어왔는데, 이제는 아예 공식적인 정례협의 채널까지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관계가 정책공조 차원을 넘어 견제 없는 유착으로까지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15일 첫 회동을 갖고 “재정부 차관과 한은 부총재 및 양 기관 실무자들로 거시정책실무협의회를 구성해 월 1회 정례적으로 회의를 갖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대내외 경제여건과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만큼 정부와 한은 간에 자료 협조, 경제상황에 대한 의견 교환 등 긴말한 정책공조 노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설명. 윤종원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두 기관의 이런 협의는 결국 국가경제 전반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기관이 협의회 구성의 필요성에 공감해 자연스럽게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두 기관이 이렇게 고위급 협의체를 출범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 경제부처 수장이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겸하던 1990년대 중반 통화금융실무협의회라는 국장급 협의체가 운영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두 기관의 협의체 구성을 바라 보는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정부와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한은이 거시정책에 대한 인식을 공유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앙은행의 존재이유를 생각한다면 두 기관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상적으로 정부는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고 반면 한은은 물가 안정에 최우선을 두고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두 기관이 너무 유착돼 있으면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상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견 교류의 통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청와대 경제수석, 재정부장관, 금융위원장 등이 참여해 매주 개최하는 경제금융대책회의(일명 서별관회의)에 한은 총재가 이미 참석하고 있는 상황. 특히 현 정부 들어 재정부 차관이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열석발언권까지 행사하고 있고, 한은은 경제 현안에 대한 시각을 담은 ‘VIP 리포트’를 만들어 청와대와 정부 등에 배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적 금리결정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그러지 않아도 금리결정에 정부의 힘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있는데 이런 협의채널까지 가동된다면 시장은 금통위 보다 정부쪽 일거수일투족을 점점 더 주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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