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에서 폭우 얘기만 나오면 또 배수로가 넘치지 않을까 불안합니다.”
수도권에 폭우가 쏟아진 지난해 9월 21일 경기 여주군 가남면 양귀리에 시간 당 100㎜가 넘는 비가 내렸다. 마을 앞 개울까지 연결된 배수로가 있었지만 불어난 물이 순식간에 범람해 일대 농경지는 물바다가 됐다. 목장을 운영하는 김모(53)씨는 “2007년 골프장 개장 이후 매년 한 차례씩 배수로가 넘쳐 목장과 논, 인삼밭 등이 피해를 입었고, 지난해에는 두 번이나 범람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마철을 앞두고 양귀리 주민들은 또 배수로 범람 걱정에 휩싸여 있다. 주민들은 “골프장이 생긴 뒤 물난리가 시작됐다”며 화살을 언덕 위 A골프장으로 돌리고 있다. 이에 대해 골프장 측은 “집중호우에다 주민들이 요구한 배수로 보강공사 때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면서 양 측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15일 양귀리 주민들에 따르면 27홀 대중골프장이 생기기 전 언덕 위에는 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배수로는 자연 수로라 넘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골프장이 조성되며 상류에 골프장에서 나오는 지름 1,500㎜인 원형배수로 두 개와 지름 1,100㎜인 배수로 한 개가 새로 생겼다. 언덕 아래 농경지 쪽은 가로 세로 1,200㎜인 이전 박스형 배수로를 그대로 사용한다. 주민들은 “나무가 없어져 땅이 물을 머금지 못 하는데다 물살이 빨라져 비가 많이 오면 배수로가 넘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A골프장의 논리는 다르다. 골프장 측은 “전체 물의 양은 골프장 조성 전후가 똑같고, 오히려 지금은 폭우 때 골프장 저류지에서 물을 저장해 밑으로 내려가는 물은 예전보다 적다”는 입장이다. 골프장 관계자는 “공사 당시 주민 요청으로 언덕 쪽 배수로를 콘크리트로 보강한 뒤 물이 상류에서 분산되지 않고 아래로 집중된 게 범람 원인으로 추정된다”며 “개장 초기에는 원인을 떠나 도의적인 입장에서 위로금을 준 적이 있는데 요구가 과도해 더는 수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4년을 끌어온 갈등이지만 올해도 달라진 것은 없다. 2007년과 2008년 배수로 범람 뒤 여주군은 기존 배수로와 직각으로 새 배수로를 하나 더 뚫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게릴라성 집중호우는 1970년대에 비해 2.5배나 늘어 올해도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가남면사무소 관계자는 “농경지 쪽 배수로를 확장하려 했지만 소에 영향을 준다는 목장주의 반대로 관련 예산을 세우지 못했다”며 “내년에는 어떻게든 배수로를 넓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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