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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해법, 대학 구조조정이 먼저다] (1) 대학 진학률 80%,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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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해법, 대학 구조조정이 먼저다] (1) 대학 진학률 80%, 이대로 좋은가

입력
2011.06.1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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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못가면 낙오자" 인식… 학력거품이 교육 高비용 불렀다

1970년대 초 은행에 입사해 2005년 퇴직한 김모(59)씨는 상업고교 출신이다. 김씨는 "당시만해도 입행동기 10명 가운데 9명은 상고 졸업생이었다.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상고에 몰렸고, 상고에서는 3년 동안 은행 실무를 집중적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은행에서도 상고 졸업생을 선호했다"고 말했다.

A은행의 경우 1970년대 93%에 이르던 고졸자 입사 비율이 1980년대엔 61%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대졸자(39%)를 크게 앞질렀다. 하지만 1990년대는 27%로 떨어져 대졸자(73%)에 훨씬 못 미쳤다. 그리고 2000년 이후에는 입사자의 대부분이 대졸자로 채워졌다.

그렇다면 은행 업무가 대졸자들이 해야 할 만큼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일로 바뀐 것일까. A은행 관계자는 "일부 기획 업무를 제외한 70~80%는 아직도 단순 업무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인건비가 싸면서도 실무 능력이 뛰어난 고졸 출신을 많이 채용했지만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대졸 실업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정부에서 대졸자를 우선적으로 선발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이후 은행 입사자는 대졸자 일색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대졸자들에게 취업 자리를 뺏긴 상고 등 전문계고 졸업생들은 대학 진학을 택했다. 2010년 전문계고 졸업생의 진학률은 71.1%, 취업률은 19.2%였다.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사회 특유의 문화적 배경과 대학의 난립 및 정원 증가가 맞물리면서 대학 진학률은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1990년 33.2%인 대학 진학률은 2005년 이후 80%대로 치솟았다. 이 같은 과잉 대학진학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정부 예산을 투입해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겠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도 낮을 뿐 아니라, 자원의 효율적 배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학교육과 관련해 지출되는 비용은 사회 전체적으로 연간 42조7,29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등록금과 사교육비, 부대비용 등 대학생이 지출하는 직접교육비는 연간 21조2,44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 교육에 따른 기회비용을 뜻하는 간접교육비는 21조4,855억원으로 추정됐다.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대학생의 재학기간이 늘어나 발생하는 추가 간접교육비는 5조4,17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재수생과 편입준비생의 교육비도 각각 7,685억원과 1조2,000억원에 달해 대학 교육과 관련된 총 교육비는 가구당 246만5,000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막대한 비용이 대학교육에 들어가지만 만족도는 형편없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01~2006년 대졸 취업자 1,01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0.3%가 '대학교육이 기업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현재 수행중인 업무와 관련해서는 28.2%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답했다.

기능사를 양성하는 노동부 산하의 한국폴리텍대학에는 전문대학과 4년제대학 졸업자가 취업을 위해 '역류 입학'하는 비율이 2006년 37.1%에서 2008년 41.6%로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교육이 반드시 취업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대학교육의 효율성이 매우 낮다는 하나의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 "등록금 정부 지원, 계층간 형평성 훼손" 목소리

여야 모두 대학 등록금 인하를 위해 정부 예산을 추가 투입하는데 의견이 일치한 가운데, 현재 쟁점은 정부예산을 얼마나 투입할 것인지, 즉 국민이 대학 등록금 인하를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로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투자인 대학 등록금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계층간 형평성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보다 근본적 반대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 정부의 대학등록금 지원은 하위계층에게 선별적으로 이뤄져야지 모든 계층에게 혜택을 주면 오히려 대학진학률이 높은 중ㆍ상위 계층에게 그 혜택이 집중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14일 한국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경제학에서 정부의 예산투입이 정당화되는 경우는 치안 같은 '공공재'나 무상급식ㆍ의무교육 같은 '가치재' 또는 환경오염방지 같은 '외부성(外部性)'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수많은 연구결과가 대학 무상교육의 혜택은 중산층 이상에게 집중돼 계층 공고화의 역효과를 낳고 있다 지적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같은 논리로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에는 공개적으로 찬성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일부 사립대학 이사장들이 간신히 건물만 지어놓고 마치 대학이 사유재산인 양 전횡을 일삼으며 등록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해왔기 때문에 등록금을 낮추라는 요구가 도덕적 정당성을 갖게 됐다"고 반값 등록금에 대한 요구가 높은 지지를 얻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한정된 세원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는 정부는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이제까지의 반값 등록금 약속의 문제점을 인정한 후 예산을 건전한 대학과 취약계층에 집중하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 근본 원인은 학력 차별

80%를 넘나드는 비정상적 대학진학률의 배경에는 개인의 능력보다 학력을 과대평가하는 사회풍조가 자리잡고 있다. 대학 학력에 대한 이상집착이 불러온 학력인플레 탓에, 고졸 구직자들은 비정규직, 저임금 직장으로 내몰리는 등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추산한 지난해 학력별 정규직 비율에 따르면 고졸 근로자의 40.8%만이 정규직 형태로 고용됐고, 절반을 훨씬 웃도는 59.2%는 비정규직의 불완전한 고용상태에 놓여 있다. 고졸 근로자 정규직 비율은 전체 근로자 정규직 비율 50.2%에도 10%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반면 전문대졸업자의 정규직 비율은 61.4%, 4년제대학 졸업자는 72.4%, 대학원 졸업자는 80.4%로 심한 차이를 드러냈다.

학력 차별은 공공기관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총리실 발표에 따르면 157개 공공기관이 신규채용 때 학력기준을 제시했으며, 이중 15개 기관이 학력에 가점을 부여했다. 또 68개 기관은 보수 산정에서 고학력자를 우대했다.

임금 격차도 매우 크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01년 고졸 근로자의 평균 정액급여는 매월 108만7,848원으로, 대졸이상 근로자 173만251원의 62%에 불과했다. 이 격차는 해마다 더 벌어져 2009년에는 고졸 근로자 급여(166만6846원)가 대졸이상 근로자(284만6,748원)의 58%에 불과했다. 전문계고 학생들의 상당수가 대학 진학을 고려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홍영란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싱가포르의 경우 고교만 졸업해도 여유로운 수입이 보장되고, 이 수입이 부족할 경우 학력에 따라 국가가 저금리 대출 등을 지원한다"며 "우리도 고졸 구직자가 임금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을 강구해야 대학 과잉 진학 문제가 풀린다"고 말했다.

시급한 등록금 대책과 함께 학력차별 철폐를 제도화해 고교 졸업생들에게 충분한 직업교육과 경제적 보상을 보장함으로써 과잉 대학교육의 문제를 해소하고 국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홍 위원은 "교육당국과 기업이 특성화고 등의 졸업자에게 충분한 경제적 보상과 혜택을 꾸준히 제공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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