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부터 5,500만명(중복 포함)이 넘는 국민의 개인 정보가 경찰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ㆍ킥스)에 차곡차곡 쌓여왔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런 시스템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우연히 그 사실을 알고 개인 정보를 삭제하려 해도 절차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모(32)씨는 지난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울 마포경찰서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가 깜짝 놀랐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에서 근무했던 이씨는 2008년 8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 현장에서의 인권 침해를 조사하러 갔다가 시위자로 몰려 경찰에 연행됐다. 하지만 근무 중이었음을 증명해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킥스에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및 일반교통방해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은 그의 정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개인 정보 삭제를 청구하는 행정절차조차 없어 이씨는 경찰서 민원실에 비치된 정보공개 청구 용지에 개인 정보 삭제 요청 내용을 적어 접수했고, 며칠 뒤 경찰로부터 삭제를 통보받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류제성 변호사는 "경찰이 아무 반발 없이 삭제를 해준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기준도 없이 개인 정보를 모으고 있다는 걸 인정한 셈"이라며 "문제는 킥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정보 삭제를 요청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시스템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A(40)씨 역시 지난해 음주운전 혐의로 경찰서에 갔는데, 경찰이 8여년 전 술자리에서 붙은 시비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일을 들먹였다. A씨는 "경찰이 음주운전과는 상관도 없고 당사자와의 합의로 조사만 받고 끝낸 옛일까지 꺼내 굉장히 불쾌했다"며 "나는 법학을 전공해 이런 시스템이 있는 줄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채 당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특히 데이터베이스(DB)의 특성상 한 번 기록되고 저장되면 다른 DB와 연계돼 정보량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류제성 변호사는 "범죄사건부 등 경찰이 보존하고 있는 서류 및 장부도 법적 폐기 시한이 있듯이 DB는 악용 우려가 훨씬 크기 때문에 훨씬 엄격한 삭제 규정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장여경씨는 "전자화가 편리하고 효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와 참고인, 무죄를 선고받은 피의자의 정보까지 무차별적으로 수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킥스의 개인 정보 기록 기준 및 보존 기간을 법적으로 명확히 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예컨대 피의자의 인적사항과 죄명 등이 전산으로 입력된 수사경력자료의 경우 형의실효등에관한법률에 삭제 기한이 명시돼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검찰의 기소유예에 의한 불기소 처분의 경우 처분일로부터 3년, 법원의 무죄 판결이 확정된 경우 판결 확정시에 자료를 삭제하도록 돼 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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