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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의 신조어로 본 한국, 한국인] <16> 겉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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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의 신조어로 본 한국, 한국인] <16> 겉친

입력
2011.06.1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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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만났던 한 대학생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가면 우울증이라고 아시죠? 제 친구들, 다 가면 우울증이에요. 다들 웃고 다니면서 명랑을 떨지만, 집에 가면 머리 박고 있어요."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가면 우울증(假面憂鬱症, Masked depression)이란 '우울한 기분이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겉으로 별로 드러나지 않는 우울증'을 말한다. 가면 우울증은 우울감과 무력감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식욕 부진, 가슴 두근거림, 피로감 따위의 신체화 증상이나 지나친 명랑함, 약물ㆍ알콜중독, 도박, 과잉행동, 가성치매 등으로 나타난다. 가면 우울증은 속마음은 우울하기 그지없으나 한국사회가 우울한 이들을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해 무시하거나 차별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우울하지 않은 척 해야만 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사회현상이라 할 수 있다. 즉, 무한경쟁의 한국사회가 생계를 위해 대중들 앞에서는 한껏 쾌활한 척 하지만, 집에 가서는 우울증으로 몸살을 앓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것이다. 이 가면 우울증은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전형적인 우울증보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데, 가면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겉친'은 많지만 진정한 친구나 대인관계가 없다. '겉친'이란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정도의 친구가 아닌 겉으로만 친한 친구를 줄인 신조어인데, 겉으로는 친한 척 하는데 속으론 뒷담화를 하는 친구라는 나쁜 의미로도 쓰인다.

익히 알려진 대로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들 중에서 1위이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자살률이 11.2명인데 비해 한국은 28.4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2009년의 자살률은 1999년을 기준으로 무려 107.5%가 늘어나서, 자살에 의한 사망자수는 1만 5,413명으로 2008년보다 2,555명(19.9%)이 늘었다. 하루 평균 42.2명, 평균 34분마다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이렇게 자살자 수만 많은 게 아니라 지위고하나 남녀노소, 계급계층을 가리지 않고 자살자가 속출하며, 심지어는 소위 행복 전도사까지도 자살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한국인의 자살이 단순한 경제적 빈곤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는 걸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자살을 막는 최후의 보루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살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때 감행하게 되는 것이므로, '관계의 힘'이 자살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친밀한 관계로부터 단절되는 것이 자살의 주요 원인임은 올 봄에 자살했던 한 슈퍼모델이 미니홈피에 남겨놓은 다음 글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백 번을 넘게 생각해보아도 세상엔 나 혼자 뿐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전 분야를 무시무시한 승자독식의 경쟁원리가 지배하게 되면서, 과거에 한국인들을 사회적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해주었던 공동체가 대부분 와해되었다. 그 결과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속친(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은 하나도 없고, 본질적으로 경쟁관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는 겉친만 수두룩한 고독자가 되어버렸고, 그것이 자살률의 증가로도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개인들은 '백 명의 겉친이 한 명의 속친보다 못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며, 한국사회는 대인관계를 왜곡시키는 과도한 경쟁을 시급히 제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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