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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지진과 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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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지진과 역사 교과서

입력
2011.06.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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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우리는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 등에 의한 역사 교과서 검정 결과를 전해 들었다. 올해는 새역모가 펴낸 지유샤 교과서 외에도 '본류 우익' 이쿠호샤 교과서가 역사 왜곡에 가세했고,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기술이 공민 교과서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특히 독도 기술은 작년 초등학교 교과서가 전초전이었다면, 올해 본격화한 형국이다. 내년 3월에는 고교 교과서 검정 소식이 날아들 것이다.

한일 관계의 심층 드러내

하지만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일 관계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한국인들은 참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탄식을 연발했다. 고초를 겪는 일본인을 돕자는 사회적 공감대 아래 300억 원이라는 거금이 모였다.

역사 왜곡과 지진구호 성금. 얼핏 별도 사안인 듯하지만, 곱씹어볼 대목이 적지 않다. 두 사건은 한일 관계의 심층을 드러내주기에, 향후 양국 관계의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해 보는 좋은 기회이다.

가능성 측면은 이런 맥락이다. 1995년 1월 고베 대지진이 엄습하여 6,0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았다. 무너진 고가도로와 화염 속의 가옥 등 참상이 연일 한국의 안방에도 전해졌지만, 일본을 돕자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보통 한국인들과 양식 있는 일본인들은 1923년 관동 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성금 러시가 이어졌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낳았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역사 문제의 쟁점화를 통해 우리 안에 구축된 일본 인식의 심화와 확대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2001년부터 새역모를 비롯한 일본 우익의 대두는 한일 관계에 먹구름을 몰고 왔다. 우경화, 군사대국화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교과서 우익들은 우리를 분노케 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자국의 비뚤어진 행보에 '노(No)'를 외치는 수많은 일본인을 만날 수 있었다. 한일 시민연대의 기치 아래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바로잡자는 활동이야말로 100년 전 좌절된 '동양 평화'의 후신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바다 건너 친구를 만든 역사적 진보가 보통 한국인을 모금 대열로 나아가게 했다.

2011년 3월이 표상하는 한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짚어야 한다. 한반도 관련 역사의 기술은 교묘하고 고도화한 반면, 독도 문제의 부각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와 같이 전문학계의 연구를 바탕으로 논쟁 강도와 폭을 줄일 수 있으나, 영토 문제는 역사적으로 외교 협상 혹은 전쟁으로 결판 났다. 독도 기술에 교육기본법과 학습지도요령을 앞세운 일본 정부의 관여가 직접적이고 고압적이었던 점도 우려를 자아낸다. 이제 일본 중학생은 '한국의 불법 점거'가 명기된 교과서를 통해 이웃 나라를 배우게 된다.

내년 고교 교과서 검정 주목

5월 10일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이쿠호샤 교과서 채택을 독려하는 심포지엄에서 교육기본법 개정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웠다. 일본 우익의 기대주 아베의 대담한 행보에 비춰볼 때 작년 강제병합 100주년에 천명된 간 나오토 담화는 형식적이고 유약하다.

그 2주 뒤 도쿄에서는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한일 정상은 지진 쪽만 선택하고 교과서 문제를 봉인했다. 이대로 간다면 한일관계 '빅뱅'의 나머지 에너지는 내년 고교 교과서 검정 발표를 계기로 분출될 것이다. 2012년 3월 말의 한일 관계, 생각만 해도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진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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