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았다. 한 교실에 70명은 예사였다. 그래도 교실이 모자라 도시에서는 오전 오후반으로 나눈 2부제 수업을 했다. 어느 나라, 역사에서도 큰 전쟁을 치르고 나면 아이를 많이 낳는다. 종족 보존의 본능이다. 국가적으로도 필요하다. 우리도 그랬다. 한국전쟁 후 출산율이 급증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근대화 바람은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었다.'적게 낳아 잘 기르자'로 안돼'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외친 것은 한참 뒤였다. 한 집에 네다섯은 예사였다. 1955~1963년에 714만 명의 '그들'은 이렇게'베이비붐 세대'라는 꼬리를 달고 태어났다.
■ 농경사회 끝자락에서 첨단 IT시대까지를 겪어야 했고, 살아남으려 늘 '지옥'같은 경쟁을 뚫어야 했다. 그들 앞에서 세상은 몇 번이나 요동쳤고, 가치관의 충돌에 눌리고 밀리는'낀'세대로 살아야 했다. 평균수명은 길어졌는데, 기대했던 정년 연장 법제화도 물거품이 돼 "이제 그만"하고 나가란다. 기업의 평균 정년이 57.3세이니 딱 지금부터다. 버티자니 눈치 보이고, 나가자니 자식들 뒷바라지에 부모공양 하느라 모아 놓은 돈도 없어 노후가 캄캄하다. 남은 30년을 무슨 수로 버티나. 무엇을 하나. 산에 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 그나마'내 몸'하나라면 다행이다. 자식들 걱정까지 떠안고 있다. 비싼 입시과외비, 대학등록금에 해외연수까지 보내주었지만 놀고 있다. 청년실업률 8.7% 시대. 자신들은 '중동의 오일 달러와 건설 붐'덕이라도 봤지만, 자식들은 그런 '행운'마저 없다. 세계경제 침체와 첨단산업화로 있던 일자리까지 없어지고 있다. 정부가 발벗고 나서고 있지만'언 발에 오줌 누기'다. 많이도 아닌, 정부시책에 맞춰 하나 아니면 둘만 낳았는데도 700만 명이나 되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많은 돈으로 차라리 장사나 시킬 걸. 이제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 결혼도 걱정이다. 14만 명이나 많이 태어나 고학력을 자랑하는 28~32세의 딸들은 신랑감이 없다. 아들들은 더 심각하다. 당시 남아선호 탓에 결혼연령(남자 28~32세, 여자 25~29세)의 성비(性比)가 119:100이란다. 게다가 힘든 자녀양육보다는 자기 일하며 자유롭게 살겠다는 '골드 미스'가 날로 늘고 있으니. 노후 자식들의 효도나 죽은 뒤 제삿밥 얻어먹는 것은 고사하고 고학력 실업자인 노총각 자식까지 부양하며 살아야 할 판이다. 하루빨리 취직도 하고 외국인, 연상, 재혼이라도 좋으니 결혼해 품에서 떠나면 좋으련만. 한숨이 절로 난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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