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제2의 리먼브러더스가 될 것인지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13일(현지시간)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세계 최하위인 CCC로 3단계 하향조정해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에 해당한다고 밝히면서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유럽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스를 지원할 수밖에 없어 최악의 상황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여전히 팽배하다.
민간 손실 유발하나
14일 유로존(유로사용국가) 재무장관들은 그리스 2차 구제금융지원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이날의 최대 쟁점은 그동안 의견차를 보여왔던 민간채권자의 지원참여 여부였다.
독일정부는 만기도래에 관계없이 채권자가 보유한 국채를 7년짜리 국채로 맞바꾸는 채권스와프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금융기관 모두 손실을 감수하고 지원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총 1,720억유로의 2차 구제금융 중 약 300억유로를 민간이 책임지게 된다.
울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민간의 역할이 2차 지원의 중요한 부문"이라며 "은행과 민간 채권자들이 참여한다면 독일은 더 큰 지원을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유럽중앙은행(ECB)과 프랑스정부는 어떤 종류의 비자발적 채무조정도 채권시장에서 디폴트로 받아들여져 충격을 준다며 반대하고 있다. 대신 그리스 국채만기가 3년 이내인 투자자들에게만 채무만기를 연장해주는 롤오버(만기연장)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독일이 민간 채권자 참여를 고수하는 것은 그리스 퍼주기 지원에 대한 자국 내 비난여론이 크기 때문이다. 유럽경제를 이끌고 있는 독일은 1차 구제금융 지원 때 EU 회원국 중 가장 많은 비용을 부담했다. 반면 그리스채권을 450억유로나 사들인 ECB와, 그리스 민간은행 채권이 많은 프랑스는 민간투자자 보호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날 재무장관회의에서는 절충된 합의안이 나올 것으로 전망됐다. 벨기에 디디에 레인데르스 재무장관이 제시해 온 민간 부담 250억유로 안팎에서 타협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EU 집행위원인 올리 렌은 14일 독일 차이퉁에 "협상타결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디폴트 되면 일파만파
S&P가 EU 재무장관회의를 앞두고 신용등급 강등에 나선 것은 민간 금융기관에 부담을 지울 경우 디폴트로 볼 수밖에 없다는 으름장 성격이 커 보인다. 2차 지원에 민간투자자를 포함시키면 제2의 리먼브러더스가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내고 있는 것이다.
신용평가사들의 경고는 이렇다. 민간투자자들이 손실을 볼 상황이 되면 신용평가사들은 그리스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하고 투자자들은 손실만회를 위해 보유자산을 투매하는 연쇄적 반응으로 리먼브러더스 부실에서 촉발된 시장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에까지 줄줄이 충격을 줄 수 있다. 미국 우량 머니마켓펀드는 유럽은행 관련 자산 비중이 높기 때문에 미국 금융기관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유럽이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스에게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어떤 구제금융방식을 선택하더라도 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먼저 그리스의 채무 3,300억 유로는 한 국가가 부담하기에는 크지만 금융시장이 붕괴하지 않도록 은행과 다른 금융기관들이 손실을 감내하기에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또 신용평가사들이 일부 채무가 상환되지 않는 상태인 선택적 디폴트를 선언한다고 해도, 시장에 미치는 여파는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스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진 못해도 유로존을 벗어나지 않고 구제금융 계획을 성실하게 수행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근본적 해결책은
물론 그리스의 위기는 돌려막기식 구제금융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스가 자체적으로 경제를 회복시켜 채무를 해결하기는 요원하다.
그리스 위기가 근본적으로 회복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유로존 해체만이 답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1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그리스 채무 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은 결국 유로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예전의 통화로 복귀해서 대폭적인 통화절하라는 응급책을 동원해야 위기를 헤쳐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채권자가 대폭 채무탕감을 해주는 것만이 그리스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유럽이 지원방식을 두고 논의하는 것이지 그리스 지원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며 "그리스가 실제 디폴트에 처할 가능성은 높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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