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에서 '아이돌'의 일반적 의미는 10대들이 열광하는 10대 후반~20대 초반의 가수ㆍ연기자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대중음악의 원조아이돌로 캐나다 출신 가수 폴 앵카를 꼽을 만하다. 그는 1950년대 말 겨우 열여섯 나이에 한 곡으로 일약 전 세계 10대의 우상이 됐다. 비틀스나 롤링스톤스 같은 전설의 밴드들도 스무 살 갓 넘은 멤버들로 데뷔, 10대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모았다는 점에서 초기는 아이돌로 분류해도 무방할 것이다. 꼬마 때부터 무대에 서서 20대 초에 이미 팝의 제왕이 된 마이클 잭슨도 마찬가지다.
■ 꽃미남 이미지까지 더해진 첫 아이돌 가수는 1980년 내한공연으로 우리 10대 소녀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레이프 가렛일 것이다. 90년대 들어서는 아이돌의 의미가 더욱 확장돼 뉴키즈온더불록, 백스트리트보이스와 스파이스걸스가 각각 보이그룹, 걸그룹의 전형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들 아이돌은 앞서 거명한 거장 '뮤지션'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스스로 억누를 수 없는 동기와 재능으로 새로운 음악세계를 창조했다기보다는 대중의 욕구와 기호를 정확히 간파해낸 유능한 프로듀서에 의해 만들어진 '연예인'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그렇다.
■ 우리의 아이돌들이 프랑스 파리공연을 기점으로 마침내 그 세계적 파괴력을 유감없이 과시해 보였다. 한때 일본의 사카모토 큐, 핑크레이디 등이 빌보드차트 정상에 오른 적은 있으나 이 정도의 집단열광은 아시아권 국가의 대중음악인으로선 일찍이 받아본 적 없는 경이적 '사건'이다. 문화야말로 진정한 국격의 바탕이라는 점에서, 산업능력을 넘어 더 높은 도약의 계기를 찾던 우리에게 이 의미와 효과는 더할 수 없이 크다. 같은 연배 지인 여럿에게서 "이젠 채널 돌리지 않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음악프로를 봐줘야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 그러나 좋으면서 한편으론 슬그머니 걱정도 된다. 우리 아이돌들과 그 음악(퍼포먼스가 더 적절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이 너무도 정교한 기획과 완벽한 공정을 거친 공산품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물은 끊임없이 변하는 소비 기호로 인해 긴 생명력을 갖기 힘들다. 80년대 이후 세계적 아이돌들의 운명도 대개 비슷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화려한 종합세트공연이 아니고도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를 건드릴 수 있는 큰 음악인들이 속속 뒤를 받쳐주길 기대한다. 어쨌든 아이돌들이 문을 열었다. 일단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