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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반값 등록금' 쓰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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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반값 등록금' 쓰나미

입력
2011.06.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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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대학은 교회의 성직자 양성기관이었다. 이어 제왕과 도시들이 관료와 전문가 양성을 위해 대학을 세웠다. 대학의 학문과 지식이 숱한 난제 해결에 도움돼 사회 전체에 유익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수업료를 받지 않았다. 인재 발굴을 가로막아 성직자와 관료, 전문가의 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 교육은 상류 지배계층에 국한됐다. 중ㆍ하류 계층은 18세기까지 유럽 전역에 수십 곳뿐인 대학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시민과 대학은 거리 멀었다. 그렇게 계층 이동을 자연스레 견제했다.

대학은 사회 지탱하는 공적 제도

이게 허물어진 것은 19세기 말, 대학의 자유를 중시한 독일'훔볼트 모델'의 확산에 따른 것이다. 2차 대전 뒤 각국이 과학기술 연구에 역점을 둔 현대적 인프라와 무료 교육을 확대, 근로 계층을 비롯한 대중이 대학 교육을 받게 됐다. 대학은 사회를 지탱하고 지적 활력을 창출하는 공적 제도, 공공기관(Public institution)으로 자리 잡았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대륙이 대개 대학 수업료가 없는 것은 이런 전통이 바탕이다. 독일은 몇 년 전부터 일부 수업료를 받지만 연간 500 유로, 75만원 정도다. 무상 교육과 복지 혜택에 기댄'만년 대학생'이 늘어나는 폐단을 막기 위해서 일뿐, 무상교육 원칙은 온전하다.

"그래서 독일 프랑스 대학이 무너졌다"는 주장은 이들 국가가 지적ㆍ경제적으로 건재한 현실과 동떨어진다. 유럽의 대학 교육은 정부 재정으로 공급하는 공공재(Public goods)이다.'만년 대학생'은 수익자부담 원칙이 배제된 공공재에 있기 마련인 공짜 승객(Free rider)일 뿐이다.

영국도 대학 교육을 정부 재정으로 운영한다. 생활보조금도 주었다. 1990년대 들어 보조금을 저리 대출로 바꾸고 수업료를 받기 시작했다. 연간 1,000파운드로 출발한 등록금은 올해 상한선 3,290파운드, 약 580만원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배 가까운 걸 감안하면 우리 절반 수준이다. 여기에 학자금과 생활비를 장기저리로 빌려준다. 졸업 후 연간 소득 2만1,000파운드, 3,700만원을 넘을 때부터 갚으면 된다.

지난해 집권한 보수당 정부는 등록금을 6,000~9,000파운드(약 1,000~1,5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나서 교수 학생들이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졸업생들의 직업과 소득 혜택에 비춰 교육비 부담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학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반대론은 "보편적 대학 교육의 최대 수혜자는 국가 전체 경제이므로 국가가 부담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영국 사회의 진통은 미국처럼 대학 교육을 민간재(Private goods)로 바꾼데 따른 결과이다. 우리도 1990년 대 세계화와 경쟁력 논리를 추종해 대학 교육을 시장에 내맡긴 결과, 숱한 문제를 안고 있다. '반값 등록금'논쟁은 대학 교육이 기괴한 모습으로 왜곡된 현실을 새삼 드러냈다. 이를테면 시장 논리를 좇는 미국도 명문 사립대 등록금은 연간 2만 달러를 넘지만, 전체 3분의 2에 이르는 공립은 평균 6,000 달러, 600만원 정도다. 게다가 우리보다 훨씬 너그러운 장학금과 학자금대출 제도가 있다.

지속가능한 큰 틀 다시 짜야

정치권이 반값 등록금을 들고 나온 속내가 무엇이든, 오래 억누른'판도라의 상자'뚜껑을 연 것과 같다. 모두가 쓰나미에 휩쓸릴 수 있다. 이제라도 구조조정 등 대학 교육의 큰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영국은 전환기마다 정치와 사회를 아우른 중립적 위원회를 구성, 시대에 어울리는 국가와 개인의 교육비 부담비율과 계층별 대책을 마련했다. 그 위원회 보고서와 정부 정책 명칭이 '향후 20년 고등교육계획''21세기 고등교육''지속가능한 미래 고등교육'등인 것은 허울뿐인 치장이 아니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대학은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다. "대학은 시민의 것"이라는 말에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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