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53) 전 두산 감독의 사령탑 데뷔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2003년 10월 프로야구에 ‘선동열 감독 모시기’ 태풍이 몰아치면서 9년 동안 두산 지휘봉을 잡았던 김인식 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선동열을 모시기 위해 두산은 구단주인 고(故) 박용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까지 나섰다.
두산의 ‘서울 라이벌’ LG까지 가세하면서 ‘선동열 모시기’는 경쟁을 넘어 전쟁이 됐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삼성이었다. 선배 감독들을 밀어내는 모양새로 비쳐질 것을 염려한 선동열은 수석코치 자격으로 ‘옛 스승’인 김응용 감독의 삼성 품에 안겼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격이 된 두산은 김경문 배터리코치를 긴급 호출했다. 양상문 신임 롯데 감독의 요청으로 부산행 열차에 올랐던 김경문 코치는 그렇게 해서 두산 사령탑에 앉았다. 김경문은 롯데 수석코치로 내정돼 있었다.
선수 때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감독이 된 뒤 김경문은 선이 굵은 야구로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김경문 감독은 지난해까지 재임 7년간 6차례(2006년은 5위)나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렸다.
올해 초 김 감독은 “돌아보면 김동주의 부상 때문에 5위로 떨어졌던 2006년을 뺀 나머지 시즌에는 대체로 즐거운 마음으로 감독 생활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2008년에는 올림픽대표팀을 이끌고 전무후무한 9전 전승 금메달 신화를 이뤘다. 방송 CF에도 출연하며 국민적 인기를 모은 김 감독은 그해 말 또 한 번 재계약에 성공하며 역대 OB-두산 감독으로는 김인식 감독(1995~2003년)에 이어 2번째 장수(8년) 감독 반열에 올랐다.
두산에서만 두 차례 재계약 성공, 올림픽 금메달, 뚝심의 공격야구 등 온갖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다닌 김 감독이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늘‘한(恨)’이 있었다.
김 감독은 야구계의 현안과 관련해 언급할 때도 “내가 우승을 했다면…”이라는 전제를 자주 달았다. 지난해까지 재임 7년 동안 한국시리즈 준우승만 3번에 그쳤을 뿐 우승에는 한 뼘이 모자랐다.
올시즌 개막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김 감독은 “그 동안 약속을 지키지 못해 팬들에게 죄송했다. 올해는 성적으로 보여드리겠다”며 계약기간 마지막 해 우승을 다짐했다.
두산은 4월에는 13승7패1무로 2위에 오르는 등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하지만 5월부터 ‘임태훈 파문’ ‘교체용병 농사 실패’ 등 여러 악재가 겹친 탓에 7위로 추락했다. 5, 6월 성적은 10승25패1무.
김경문 감독은 ‘통 큰’ 남자다. 그가 지향하는 야구만 봐도 그렇다. 김 감독은 소소한 것에 얽매이기 싫어하고, 한 번 결정하면 과감하게 밀어붙인다. “성적으로 보여드리겠다”던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게 되자 김 감독은 13일 전격 지휘봉을 반납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