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사태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부상 치료 차 예멘을 떠났지만 권력 공백을 수습할 정치개혁 로드맵이나 확실한 대안 세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살레 대통령의 장기 부재는 다양한 전선(戰線)을 만들고 있다. AFP통신은 11일(현지시간) "예멘 정부군이 이날 남부 아비안주(州) 진지바르 지역 등에서 이슬람 무장세력과 교전을 벌여 21명을 사살했다"고 보도했다. 아비안주 관계자는 이날 교전이 군 수송차량에 대한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시작됐으며, 정부군도 19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아비안과 샤부와 등 예멘 남부 5개주(州)는 살레가 지난달 말 시위대 진압을 위해 정부군을 대거 철수시키면서 사실상 치안 공백에 처한 곳들이다. 이 틈을 알 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세력이 재빨리 파고들며 반독재 투쟁에 머물렀던 예멘 시위 정국의 흐름을 바꿔 놓고 있다. 살레 대통령의 부상 전까지 예멘 내전은 살레 대 반정부 시위대에 동조하는 하시드 부족의 대결 구도였다. 하지만 예멘 정부는 최근 살레를 부상케 한 하시드 부족과 휴전에 합의한 뒤 이젠 남부 도시 탈환에 힘을 더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예멘에선 살레 대통령의 공백에도 내전이 끝나기는커녕 정치적 혼란만 가중되는 양상이다. 가장 큰 원인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논의 구조가 전무하기 때문. 대통령직 권한 대행을 맡은 아브드 라부 만수르 하디 부통령은 살레가 퇴진을 공식화하지 않는 한 권력이양 논의에 착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살레 대통령 복귀 전까지는 아예 야권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살레 일가가 여전히 공화국수비대를 비롯한 예멘의 정치ㆍ경제 요직을 꿰차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예멘 정국은 '살레 복귀→권력 재장악→반정부 시위 및 내전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AP통신은 12일 "공화국수비대 사령관인 살레의 장남 아흐메드가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 대통령궁을 오가며 실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재자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미온적 태도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우디는 살레 대통령 이후 권력 이양 절차를 담은 걸프협력협의회(GCC) 중재안을 주도한 국가이다. 게다가 부상한 살레의 신병을 확보, 마음만 먹으면 그를 설득할 수단도 가졌다. 그러나 사우디는 예멘 사태의 해법으로 GCC 중재안을 고수하고 있다. 오사마 노갈리 사우디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주 "살레의 부재는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GCC 중재안은 최종 서명의 주체를 살레 대통령으로 명시해 놓았다. 이는 살레가 권좌를 유지할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의 축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예멘 국민의 정서와 거리가 멀다.
AFP통신은 또 이날 사우디 내부소식통을 인용, "살레가 폐와 호흡기 쪽에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어 예멘 정부 관계자들의 면회 요청도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 보도가 사실로 판명돼 살레의 치료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면 예멘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예멘은 이집트와 달리 정해진 절차에 따라 위기를 타개하고 새로운 정치 구도를 확립할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우디가 살레 대통령을 배제한 권력이양 논의를 꺼리는 이유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알 카에다의 위협이 큰 탓이다. 예멘과 국경을 맞댄 사우디는 살레가 불명예 퇴진할 경우 알 카에다의 족쇄가 풀릴 것을 걱정한다. 알 카에다의 테러를 봉쇄할 능력을 갖춘 정권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