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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초읽기, 법률시장 지각변동/ <상> 영국 로펌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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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초읽기, 법률시장 지각변동/ <상> 영국 로펌이 몰려온다

입력
2011.06.1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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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英 중·대형 로펌 20여곳 "亞진출 최적지 한국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영국의 '공룡 로펌'들이 한국으로 몰려온다. 7월 1일부터 한-EU FTA 발효로 한국 법률시장이 개방되기 때문이다.

1998년 법률시장을 개방한 독일. 독일의 상위 10개 로펌 가운데 토종 로펌은 단 2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8개는 영국 로펌에 합병됐거나 합작 형태로 전환됐다. 1987년 비교적 일찍 법률시장 문을 연 일본도 상위 10개 로펌 가운데 3개가 미국계와 합작 로펌이다. 법률시장 개방에 따라 토종 로펌이 외국 로펌에 합병된다 해서 법률서비스의 질이 낮아지거나 법률주권이 침해된다는 의미로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독일과 일본이 저럴진대, 영국 로펌의 진출은 한국 법률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변수임에 틀림없다.

과연 법률시장 개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국내 로펌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영국과 홍콩에서 활동 중인 영국 로펌 업계를 이 달 초 현장 취재했다. 일찍부터 한국 법률시장 공략을 준비해온 영국 로펌의 움직임과 법률시장 개방이 가져올 영향, 국내 로펌의 대응 등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영국 로펌 중 현재 한국사무소 개설을 준비 중인 곳은 디엘에이 파이퍼(DLA Piper), 클리포드 찬스(Clifford Chance), 앨런 앤 오버리(Allen & Overy) 등 3곳이다. 이들은 전 세계 로펌 매출규모 순위(2009년 기준)에서 각각 3, 5, 6위를 기록한 초대형 로펌이다. 디엘에이 파이퍼는 올해 초 호주 로펌과의 인수합병으로 변호사 수에서 세계 1위로 올라 섰다.

2009년 세계 로펌 순위 1, 2위를 기록한 영국 로펌 링클레이터스(Linklaters)와 프레쉬필즈(Freshfields)도 홍콩사무소를 통해 한국 시장 진출을 적극 검토 중이다. 이밖에 한국 기업과 거래 경험이 있는 20여 개의 중ㆍ대형 영국 로펌들도 한국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디엘에이 파이퍼 등 3개 로펌의 연간 매출 규모는 모두 2조원을 넘는다. 단일 회사 매출이 한국 전체 법률시장 규모와 비슷한 셈이다. 디엘에이 파이퍼가 보유하고 있는 변호사 수는 4,250여명, 클리포드 찬스 3,200여명, 앨런 앤 오버리 2,000여명이다. 국내 1위 로펌 김앤장의 변호사 수는 500여명이다.

영국 로펌의 국내 진출은 사실상 이미 시작됐다. 미국계 로펌에서 활동했던 한국 변호사들을 잇달아 영입하고, 최근 해외 로펌 연수 경험이 있거나 해외 MBA 자격증을 가진 국내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영입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영국 로펌의 한 변호사는 "인력 구성이 시급하기 때문에 먼저 한국 변호사들을 물색하고 접촉하기도 하지만, 외국어 능력을 갖춘 한국 변호사들이 먼저 우리 쪽에 의향을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법률자문 시장을 놓고 영국 로펌은 토종 로펌과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09년 한국기업 M&A 자문시장에서 앨런 앤 오버리와 클리포드 찬스는 각각 8위, 16위로 각각 전년도에 비해 순위가 대폭 상승했으며, 링클레이터스는 4위를 기록했다.

시장 개방은 이들 영국 로펌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영어권, 유럽부터 시작된 영국 로펌의 해외 진출은 최근 아시아로 급속히 확장되는 추세다. 영국 10대 로펌 중 하나인 에버쉐즈(Eversheds)는 최근 발간한 리포트에서 "영국 로펌의 아시아 진출은 세계적 경제 흐름에 따르는 것이며, 비용절감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효과적인 선택"이라고 밝혔다.

디엘에이 파이퍼의 런던 파트너 변호사인 팀 클레멘트 존스 상원의원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를 가진 한ㆍ중ㆍ일 가운데 이미 시장을 개방한 일본은 성장세가 둔화됐고, 중국은 정치적 환경의 차이로 현지 사무소 유지에 어려움이 있다"며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탄탄한 경제를 가지고 있고 정치적 걸림돌도 없어 관심이 아주 높다"고 말했다. 한국 법률시장은 영국 로펌에는 'Move to the East'(에버쉐즈 리포트의 표현) 정책을 실현할 최적지라는 얘기다.

한국 로펌들도 시장 개방에 대비해 아시아 지역에 사무소를 마련하고 국제적 업무능력을 지닌 변호사들을 지속적으로 고용하는 등 대비를 해왔다. 그러나 영국 로펌들의 세계적 네트워크와 경험 등을 단시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국내 로펌의 한 변호사는 "영국 로펌의 진출이 국내 로펌 업계에 위기감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우리도 그동안 경험과 경쟁력을 쌓아온 만큼 한번 붙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런던·홍콩=정재호기자 next88@hk.co.kr

■ 공룡 英 로펌들 "한국 대기업 해외자문 시장이 1차 타깃"

영국 로펌들은 시장이 개방되면 한국 기업들의 해외 자문 시장부터 집중 공략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첫 상륙 시기는 이르면 8월, 늦어도 올해 안에 주요 로펌들의 국내 사무실 개설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로펌 관계자들은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비교적 빠르게 극복한 한국이 앞으로 해외 사업 확장에 더 적극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이 한국 기업의 해외 자문 시장을 한국 법률시장 공략의 첫 타깃으로 잡은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디엘에이 파이퍼(DLA Piper) 홍콩사무소의 알라스테어 다 코스타 파트너 변호사는 "한국의 모든 시장에 관심이 있지만 그 가운데 기업 M&A 자문시장과 자본시장에 가장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국 로펌 관계자도 "IMF 당시 헐값에 넘어간 알짜 회사들이 많다는 것을 경험한 한국 기업이 미국발 금융위기로 가격이 떨어진 해외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인수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의 해외 자문 시장은 영국 로펌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분야"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은 지난해 국내ㆍ외에서 961건(거래 총액 57조원)의 M&A를 성사시켰다. 또 최근에는 한국 기업들이 외국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증시에 상장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동안 홍콩사무소를 통해 한국 기업의 M&A나 해외 자본시장 관련 자문을 해온 영국 로펌들은 한국 사무소 개설을 제2 도약의 발판으로 여기고 있다. 이외에 영국 로펌들은 전통적 강세를 가진 조세, 펀드, 부동산, 의료, 해운업 분야에서도 법률 수요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개별 기업으로 보면 삼성, 현대, LG 등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들이 영국 로펌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될 전망이다. 디엘에이 파이퍼의 팀 클레멘트 존스 파트너 변호사는 "한국 재벌은 자동차 제조부터 서비스업까지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독특함을 보여주고 있다"며 "영국 로펌도 다양한 사업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어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리포드 찬스(Clifford Chance)와 앨런 앤 오버리(Allen & Overy), 링클레이터스(Linklaters), 프레쉬필즈(Freshfields) 등 다른 영국 로펌들도 해외 자문 시장에서 이미 구축해놓은 한국 대기업과의 채널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영국 로펌들은 한국 진출 초기에 어려움을 예상하면서도 정착에 성공할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다만 '외국 로펌이 국부를 유출시킨다'는 비난 여론이 나오지 않도록, 한국 상황에 맞는 사회복지 사업도 펼친다는 등의 복안도 세워놓고 있다. 현재 디엘에이 파이퍼는 중국 등에서 활발하게 자선사업을 하고 있으며, 클리포드 찬스도 여러 국가에서 소외계층 무료 법률 서비스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시장 진출의 큰 그림을 그려놓은 영국 로펌들은 늦어도 올해 말까지 한국 사무소를 열고 인력 구성도 완료할 예정이다. 실무 준비 작업은 모두 각 로펌의 한국인 또는 한국계 변호사가 맡고 있다. 디엘에이 파이퍼의 경우 이원조 변호사, 클리포드 찬스는 김현석 변호사, 앨런 앤 오버리는 월터 손 변호사가 그 책임자다. 프레쉬필즈는 홍콩사무소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사무소 개설 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며, 링클레이터스는 시장 개방 초반에 상황을 지켜본 뒤 진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런던ㆍ홍콩=정재호기자 next88@hk.co.kr

■ 디엘에이 파이퍼 대표변호사 나이젤 노울스

영국 로펌 디엘에이 파이퍼는 올해 초 호주 로펌을 인수하면서 변호사 4,250명을 보유한 세계 1위 로펌이 됐다.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인근에 위치한 디엘에이 파이퍼 본사에서 만난 나이젤 노울스 대표변호사는 이 로펌의 파트너급 변호사 가운데 최고위 인사다.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Sir)를 받은, 법조계의 존경받는 저명 인사다. 디엘에이 파이퍼의 한국 진출 정책을 최종 승인하는 위치에 있는 그는 확신에 찬 얼굴로 "법률시장 개방은 윈-윈(win-win) 게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디엘에이 파이퍼에게 한국 법률시장은 어떤 의미인가.

"한국은 정말 중요한 마켓이다. 한국은 세계 경제, 아시아 경제의 한 축이다. 디엘에이 파이퍼는 30개 국 76개의 사무소와 4,250여명의 변호사를 통해 한국 기업에 최적의 파트너가 될 것이며, 한국 기업이 국내외에서 사업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 한국 법률시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한국 변호사들의 우수성은 잘 알고 있다. 우리 로펌에 근무하는 한국 변호사들의 활약상을 통해 그들이 고객을 대하는 뛰어난 방식과 성실한 업무능력을 경험했다. 한국 법률시장도 잘 발전했고 높은 수준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다. 이번 시장 개방이 전반적으로 한국 로펌의 서비스 수준을 높여줄 것이다. 다만 글로벌 고객에게는 글로벌 마켓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것은 법률서비스도 마찬가지다."

- 한국 로펌과의 경쟁에 자신이 있는가.

"시장 개방이 한국 로펌들과의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로펌들과 함께 일을 해 그들이 글로벌 시장에 대해 더욱 많이 알도록 도와줄 것이다. 한국이 외국 로펌들의 진입을 겁낼 이유가 없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고객에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 로펌들과 상호보완하는 관계를 통해서 이룰 수 있다."

- 토종 로펌을 인수합병할 계획이 있나.

"시장 개방 초기부터 인수합병을 크게 시작할 의도는 없다. 다만 개방이 본격화되는 2016년 이후 국제 로펌들과의 합병이 추세가 된다면, 우리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국 로펌들이 합병을 제안한다면 우리가 거절할 이유는 없다. 이것은 전혀 위협적인 제스처가 아니다. 한국인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한국 변호사들이다. 합병 후 한국 변호사들을 해고시키고 비행기로 도착하는 수백명의 영국인 변호사들로 채울 수는 없다. 우리의 독일 지부에는 독일 변호사들만 있다. 우리는 식민주의자들이 아니다."

런던=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 英로펌, 홍콩사무소 통해 한국 자문시장 이미 진출

영국 로펌의 한국 시장 진출은 공식적으로는 보름여 남았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해외 자문 시장에서는 이미 영국과 한국의 로펌 간에 치열한 주도권 경쟁이 벌어져 왔다. 시장이 개방되면 쟁탈전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 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자문을 구하려면 '토종 로펌이냐, 해외 로펌이냐'는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법률시장 개방 이전이라도 외국에 사무소를 둔 해외 로펌을 찾아가 자문을 받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그동안은 인수ㆍ합병(M&A), 금융, 지배구조 등 문제에서 국내 기업 자문 업무를 도맡아 왔던 토종 로펌들이 이 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2007년 무렵부터 풍부한 해외 네트워크를 장점으로 접근한 해외 로펌들에 조금씩 주도권을 내주기 시작, 최근에는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잠식당했다.

경제통신사 블룸버그에 따르면 2009년 국내 자문 시장 매출규모 4위는 영국 로펌 링클레이터스로 나타났다. 1, 2, 3위는 국내 로펌인 김앤장, 태평양, 세종이 각각 차지했다. 하지만 영국 로펌 가운데 전년도 17위였던 앨런 앤 오버리가 8위, 종전 순위에 들지 않았던 클리포드 찬스가 16위로 신규 진입한 점은 철옹성과 다름없던 국내 자문 시장의 판도 변화를 보여준다.

대형 로펌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M&A 자문 시장에서도 영국 로펌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1분기 한국기업 M&A 자문 시장에서는 링클레이터스가 거래총액 순위에서 6위를, 디엘에이 파이퍼가 15위를 차지했다.

국내 로펌들은 외국 로펌들이 시장 개방 전부터 국내에 비밀 사무실을 차려놓고 편법적으로 자문 업무를 수주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한 로펌 관계자는 "영미 로펌이 한국 변호사를 속칭 '얼굴 마담'으로 내세운 뒤 실제로는 홍콩이나 본사에서 파견된 변호사를 통해 업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국 로펌이 단지 외국계라는 이유로 한국 변호사보다 30% 이상 비싼 수임료를 챙기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영미 로펌 관계자들은 "본사 사무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한국 기업 고객의 편의를 위해 일부 변호사가 연락 업무 정도를 보고 있을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미국 로펌 클리어리 가틀립(Cleary Gottlieb)의 이용국 변호사는 "이미 한국 기업 고객과 충분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왜 편법을 쓰겠는가"라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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