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게놈(Second genome)'. 올 초 영국 과학학술지 '네이처'가 우리 몸에 있는 두 번째 유전체(게놈)에 주목하자고 제안했다. 2000년대 초 인간게놈프로젝트로 인간의 유전자 정보가 공개된 뒤 게놈이란 말에는 익숙해졌지만 세컨드 게놈은 아직 생소하다.
게놈은 우리 몸에 있는 유전정보 모두를 이른다. 유전자 집합체라고 보면 된다. 세컨드 게놈은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의 유전정보 전체를 말한다. 최근 국내외 과학자들은 인체와 공존하고 있는 미생물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막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난 찌는데 넌 안 찌는 이유
누군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데, 누군 세 끼 식사에 간식까지 챙겨 먹어도 말랐다는 소릴 듣는다. 이 불공평함이 지금까지는 막연히 체질의 차이로 여겼는데, 요즘 들어 과학자들은 원인이 세컨드 게놈에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최근 '네이처'에는 전 세계 인구가 보유한 세컨드 게놈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어떤 유형의 세컨드 게놈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비만이나 특정 질병에 잘 걸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비만뿐 아니다. 세컨드 게놈 차이가 장염과 크론병, 심장병 같은 각종 대사질환과 면역질환, 장기 발달 등에서 개인차를 만들어낸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장에 사는 미생물은 음식물을 몸에 흡수될 수 있는 형태의 화학물질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바로 이 점이 미생물 종류나 분포가 소화능력이나 대사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최근 아토피를 비롯한 알레르기질환이 는 것도 세컨드 게놈과 연관 있을 거라는 추정도 나온다. 산업화와 환경변화가 인류의 세컨드 게놈 분포를 변화시켜 과거엔 많지 않았던 질병들이 흔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포보다 10배 많은 미생물
우리 몸은 60조~100조개 세포로 이뤄져 있다. 몸 속 미생물은 세포보다 10배나 많다. 주로 장을 비롯한 소화기관에 많고 호흡기나 생식기, 입 속, 피부의 상피세포(표면을 덮고 있는 세포)에도 많이 분포한다. 갓 태어났을 땐 몸 속에 미생물이 거의 없다가 생후 6개월쯤부터 생기기 시작하고, 1년 정도 되면 세컨드 게놈 양이 성인과 비슷해진다. 돌 전후부터 아기들이 어른과 비슷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세컨드 게놈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다. 국가별로 자국민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특이 미생물의 유전정보를 분석하고 이를 공유하기 위해 여러 나라 과학자들이 모여 '국제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컨소시엄(IHMC)'를 조직했다. 세컨드 게놈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도 불린다.
지난 인간게놈프로젝트 결과 적어도 10만개는 될 걸로 추정됐던 사람 유전자가 2만5,000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프로젝트로 해독된 사람 유전자의 염기(유전자를 이루는 단위물질) 서열 정보는 생명과학 연구의 중요한 데이터로 쓰이고 있다. 과학자들은 IHMC가 제2의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존 게놈 연구가 알아내지 못한 생명현상이나 질병의 비밀을 세컨드 게놈이 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다.
한국인 특유 세컨드 게놈 확인
한국은 지난달 8번째 회원국으로 IHMC에 가입했다. 국내 과학자들은 한국인 특유의 세컨드 게놈을 연구하기 위해 성인 일란성쌍둥이 1,100쌍을 모집했다. 연구책임을 맡은 고광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세컨드 게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려면 유전적으로 동일한 쌍둥이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쌍둥이 중 한 명이 비만이고, 다른 한 명은 아닐 경우 세컨드 게놈을 분석했을 때 차이가 있다면 체내 미생물과 비만의 연관성을 명확히 가려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IHMC 국내 연구팀은 미국 연구팀과 함께 흑인과 백인인 미국인, 한국인 쌍둥이를 대상으로 세컨드 게놈을 분석, 한국인에게 미국인과 다른 특이한 세컨드 게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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