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한 뒤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지 1년 6개월여. 자동 폐기 수순을 밟는 것 같았던 이 법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저축은행 사태가 불거지면서부터다.
이 법의 주요 골자는 ▦한국은행의 목적에 물가안정 외에 금융안정을 추가하고 ▦금융감독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공동검사에 응하지 않는 경우 한은이 단독조사에 나설 수 있도록 하고 ▦한은의 자료 제출 요구 대상 기관에 보험ㆍ증권 등 제2금융권을 추가하는 것. 저축은행 사태가 감독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금감원의 금융회사와의 유착, 그리고 이로 인한 부실 감독에 따른 것임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감독권 분산의 일환으로 한은법 개정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 “한은이 위기 시 최종대부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한은에 충분한 정보 접근권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6월 임시국회에서 한은법 개정안의 통과 기대감이 한층 높아진 상황. 법사위 여ㆍ야 간사들이 한 목소리로 “이번 임시국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한은법 개정안에 대해 결론을 내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한은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여전한 것이 사실이다. 한은에 단독조사권을 부여하게 될 경우 수검기관인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이중, 삼중의 검사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지금도 얼마든 필요한 경우 금감원에 공동검사를 요청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단독조사권까지 넘겨달라는 것은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한은법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당사자인 한은과 금감원은 물론, 두 기관의 소속 상임위인 재정위와 정무위의 대립으로도 이어져 온 상황. 과연 한은법 개정이 중앙은행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금융위기를 차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니면 효과는 없이 금융회사들의 업무 부담만 가중시키는 건지 양쪽의 논리를 들어봤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단독조사권 찬성
"금융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비용도 금융부실로 인해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엄청난 세금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금융회사들의 편의를 위해 필요한 감독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한국은행법이 처음 제정되었던 1950년 이후에는 은행감독부서가 한국은행 내부에 있었다. 지금의 금융감독원을 설립한 것은 1998년. 영국이 금융감독기구를 통합하는 것을 본떠서 우리나라도 한국은행으로부터 은행감독기능을 분리하고 은행ㆍ증권ㆍ보험 감독기관을 통합한 것이다.
그런데 영국의 경우 2007년말 노던록은행의 파산과 국유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이유가 바로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정보부족 때문이었다. 그리고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시작한 것도 상업은행이 아닌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투자은행이었다. 이러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각국이 얻은 교훈은 중앙은행이 거시건전성 감독과 비은행 금융기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국은 2012년부터 통합금융감독기관을 폐지하고 영란은행에 다시 미시 및 거시 금융감독기능을 되돌려 주기로 하였다. 미국 또한 2010년 7월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에 의하여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의 시스템리스크 관리기능을 강화하였다. 그 외에도 독일, 벨기에, 프랑스, EU 등 많은 국가들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중앙은행의 금융감독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였다.
세계적인 금융감독제도 개편 추세에 보조를 맞추어 우리나라도 2008년 7월 이후부터 국회를 중심으로 한은법 개정이 논의되기에 이르렀으나 제대로 개정을 하지 못했다. 정작 한은법 개정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한국형 서브프라임 사태라고 할 수 있는 저축은행의 부실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였다.
저축은행 사태는 전형적인 거시건전성 감독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즉 호경기 시 부동산시장이 거품이 생성될 때 과다한 대출이 일어나고 거품소멸과정에서 급격한 대출위축이 오는 등 경기 순응성이 증폭되면서 시계열차원의 리스크를 키웠다. 그와 함께 개별적으로는 작지만 거의 모든 저축은행이 부동산거품 붕괴로 인해 동시에 부실이 드러나는 횡단면 리스크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의 실패 등도 중요한 원인이다.
이러한 형태의 시스템 리스크는 개별 저축은행에 대한 검사만으로는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시계열 리스크와 횡단면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해 한국은행의 거시건전성 감독을 강화하는 게 옳다. 저축은행의 부실이 이토록 심각한 상황에 이르도록 한국은행은 저축은행의 속사정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저축은행의 위기에 직면해서 한국은행의 정보부족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한국은행의 거시건전성 감독이 좀 더 일찍 강화되었다면 저축은행의 부실 사태를 예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최근의 국내외 금융시스템 위기가 단지 은행뿐 아니라 보험회사, 투자은행, 카드회사, 저축은행 등 비은행금융기관에서 발생하고 있어 한국은행으로서는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정보도 충분히 가질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나 지급결제위기 발생시 가장 먼저 대응해야 할 기관이 최종대부자인 한국은행이다. 그러므로 한국은행으로서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일시지급결제 부족자금 지원도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든 금융회사의 지급결제시스템에 대한 한국은행의 감독기능도 충분히 부여되어야만 한다.
금융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비용도 금융부실로 인해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엄청난 세금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금융회사들의 편의를 위해 필요한 감독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결국 한국은행의 최종목표인 물가안정을 저해하기 때문에 한국은행의 목적에 금융안정 기능을 추가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최창규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단독조사권 반대
"금감원이 고의로 한은의 공동검사 요구를 교묘하게 거부하면 한은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양 기관 간 갈등이 발생할 경우 이견을 조정할 수 있는 절차를 도입하는 것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저축은행 감독 부실 사태를 계기로 금융감독체계 개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에 대한 단독조사권 부여, 공동검사 또는 자료제출요구 대상기관의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한은법 개정안이 다시금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저축은행 감독부실이 금감원의 독점적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한은에게 감독권을 나누어 주자는 견해는 직관력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한은법 개정안이 제시하는 방향으로의 제도 개선은 얻을 것보다는 잃을 것이 많은 개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개정안은 한은의 공동검사 요구에 금감원이 불응할 경우 한은에게 단독조사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현행 한은법 및 금융위설치법 상 통화신용정책 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한은이 금감원에 공동검사를 요구할 수 있고 금감원은 이에 지체 없이 응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금감원이 공동검사를 거부하거나 공동검사를 하더라도 중요한 내용은 자신들만이 독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은에 단독조사권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현행 한은법은 제65조에 한은의 단독조사권을 이미 담고 있다. 다만 그 권한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법은 통화와 은행업의 안정이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경우 또는 전산상 문제로 금융기관의 지급자금의 일시적 부족이 발생할 경우 등 긴급사태 시에 여신을 하는 경우 한은이 금융기관의 업무와 재산상황을 (단독으로) 조사·확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로서 긴급자금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이론적 관점을 현행법은 이미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법이 한은의 단독조사권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이유는 과잉 중복검사에 의한 금융기관의 부담 증가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만약 한은에게 통화신용정책 수행을 위한 단독조사권을 폭넓게 허용한다면 금융기관들은 수검부담 증가로 정상적 영업활동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를지도 모른다.
금감원의 한정된 검사인력을 감안할 때 한은의 공동검사 요구를 현실적으로 모두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은법 개정안은 사실상 한은이 광범위하게 단독조사권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개정안이 공동검사를 금융통화위원회 의결 없이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현행법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금감원이 고의로 한은의 공동검사 요구를 교묘하게 거부하거나 파견된 한은직원을 '왕따'시키더라도 한은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그러나 이 때문에 한은에 단독조사권을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많이 나간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나은 방법은 양 기관 간 갈등이 발생할 경우 이견을 조정할 수 있는 절차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미 국회 정무위의 김용태 의원은 지난해 2월 금융감독 관련 주체들이 모두 참여하는 9인 금융위원회에서 검사 및 공동검사 요구 등과 관련한 이견을 조정하도록 하는 금융위 설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번 저축은행 사태를 통해 현행 금융감독체계가 지닌 문제들이 다시금 부각되고 보다 나은 제도적 틀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현행 한은법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이 마치 이번 저축은행 사태의 본질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한은법 개정안을 통해 금감원을 견제하는 것이 금융감독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라 보는 것은 착각이다.
채희율 경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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