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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멀구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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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멀구슬나무

입력
2011.06.1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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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주와 남부지방엔 멀구슬나무 꽃이 한창이다. 아열대성 식물이라 중부 이북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제주와 전ㆍ남북, 경남 지방에서는 마을 어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다섯 갈래의 하얀 꽃잎 가운데 짙은 보라색 수술 다발이 솟아있는 꽃송이들이 나무를 뒤덮어 멀리서 보면 은은한 연보라 빛이다. 꽃 향기는 그윽하면서 매우 짙어 한 그루의 나무만으로 마을 전체에 향내가 진동할 정도다. 이 향기를 맡고 싶어 멀구슬나무 꽃 피는 요즘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제주와 남부지방에 예년보다 열흘 정도 장마가 일찍 시작된 것은 그들에게는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다.

■ 제주에서는 먹코실낭이라고 부른다. 가지가 넓게 퍼져 여름에 좋은 그늘을 드리우는 이 나무를 제주사람들은 집 근처뿐만 아니라 밭 가장자리에도 한 두 그루씩 심었다. 밭일을 하다가 잠시 쉬거나 새참을 먹기도 좋지만 어린 아이를 뉘어놓는 장소로 그만이었다. 멀구슬나무의 독특한 살충 성분 탓에 그 그늘에는 개미 모기 등의 해충이 달려들지 않는다. 목재의 재질이 단단하고 색깔이 아름다워 딸을 낳으면 멀구슬나무를 심었다가 시집 갈 때 베어 농짝 같은 가구를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제주 사람들에겐 한층 각별한 나무가 아닐 수 없다.

■ 인도의 님(neem)나무는 멀구슬나무 사촌으로, 인도멀구슬나무라고도 한다. 고대부터 살충제나 민간치료제로 이용돼 '동네 약방'이라 불렸다. 여기서 추출한 오일을 바닥 청소할 때 쓰는데, 해충과 박테리아, 곰팡이까지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1995년 미국의 다국적 화학기업 그레이스사가 님나무에서 추출한 유지로 농약을 만들어 특허를 취득했다가 '생물해적질'(biopiracy)이라는 거센 비난 끝에 특허권을 상실했다. 유엔은 님나무를 화학비료ㆍ농약 등에 의한 생태계 파괴, 토양산성화 문제를 풀 '21세기의 나무'로 지정해놓고 있다.

■ 멀구슬나무도 살충ㆍ살균 성분이 님나무에 못지않다고 한다. 님나무 추출 물질로 만든 친환경 살충제 아자디락틴의 성분은 멀구슬나무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제주농업기술원 등에서 멀구슬나무 성분을 이용한 생물농약 개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멀구슬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지가 없는 것으로 봐 일본에서 옮겨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전북 고창에 수령 200년 넘는 나무가 있을 정도로 우리 조상들과 함께 한 역사가 이미 오래다. 아름다운 꽃과 향기, 귀중한 친환경 물질을 제공하는 식물자원으로 가꿔가야 할 우리 나무인 것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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