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시계추 현상'이란 게 있다. 주요 선거에서 어느 한 정당이 이기면 다음 선거에서는 상대 정당이 승리하는 현상이다. 절묘한 균형을 바라는 유권자의 마음이 선거에 반영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시계추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엔 한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여세를 몰아 다음 선거에서도 승리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졌다. 이런 경우에는 '패키지(package) 현상'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시계추 현상의 대표적 사례는 2002년 선거였다. 6월 지방선거 때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압승했다. 불과 6개월 뒤에 치러진 12월 대선에서는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극적으로 축배를 들었다. 반면 2007년과 2008년에는 패키지 현상이 벌어졌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두 배의 득표율 차이로 누르면서 승리했다. 이어 2008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MB 바람'을 등에 업고 과반 의석을 얻으면서 대승을 거뒀다.
총선서 여당 고전하면 대선은?
그러면 내년에는 어떻게 될까. 4월 11일 치러지는 19대 총선과 12월 19일 실시되는 18대 대선에서는 시계추 현상과 패키지 현상 중 어느 쪽으로 가닥이 잡힐지 궁금하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총선을 분석해야 한다.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선거를 점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내년 총선에서는 여당이 고전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선 대통령 임기 5년 차에 실시되는 총선이므로 현정부의 실정(失政)을 심판하는 선거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일보가 지난 3, 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여당의 고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내년 총선 때 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이 52.6%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32.7%)보다 무려 20%포인트 가량 많았기 때문이다.
4 ∙27 재보선에서 참패한 한나라당의 요즘 풍경을 봐도 총선에서 가시밭길을 걷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유권자들은 총선에서 주로 과거를 보고 판단한다. 특히 오만하거나 '오버(over)'하는 정당을 심판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3년 간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명박계가 밀어붙이기를 했는데, 요즘엔 여당의 신주류로 부상한 친박근혜계와 소장파 그룹이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친박계 이해봉 전국위의장의 행태는 대표적 사례다. 전국위에 불참하고 위임장을 제출한 266명의 의사를 자신(의장)과 같은 의견으로 간주해 전당대회 룰을 강행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신주류의 횡포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당 안팎에서는 "신악(新惡)이 구악(舊惡)보다 더 하다"는 얘기까지 흘러 나왔다.
내년 총선에서 어느 당이 제1당이 될 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이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더라도 시계추 현상에 따라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최근 이 문제를 놓고 선거 전문가들과 토론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내년 대선이 득표율 1~3%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박빙의 시소게임이 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내년 총선과 대선은 같은 흐름으로 간다고 봐야 한다"면서 패키지 현상 쪽에 무게를 실었다. 총선에서 야당 바람이 크게 불게 되면 이른바 '박근혜 대세론'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선에선 대통령후보 개인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야당의 추격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안주할 수 없는 '박근혜 대세론'
어쨌든 여야의 대선 주자들은 내년 총선이 끝난 뒤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된다. 유권자들은 그 때부터 진지하게 '상품'을 고르게 된다. 특히 지역주의와 이념 갈등의 구도에서 벗어나려는 유권자들이 늘고 있는 게 새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들은 겸손한 모습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지도자를 바라고 있다. 한나라당과 박근혜 전 대표는 '대세론'에만 안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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