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장을 지낸 고(故) 오성수씨, 김병량씨, 그리고 이대엽씨. 이들에게는 재직 중 비리로 구속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1990년대 분당신도시 개발과 함께 인구 100만명의 대도시로 급성장한 성남은 이권에 개입될 여지가 유독 많았고, 전 시장 3명이 줄줄이 불명예 퇴진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런 성남에서 이재명(47) 현 시장은 올해 3월초 시장실 천장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녹음 기능까지 갖춘 CCTV는 시장의 모든 면담 장면과 대화 내용을 기록한다. 스스로를 구속할 CCTV를 설치한 이유에 대해 이 시장은 “시장실로 (돈)봉투를 들고 오는 사람이 많아서”라고 12일 밝혔다. 지난해 7월 이대엽 시장이 물러나며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 출신인 이 시장이 취임한 뒤에도 ‘봉투’로 민원을 해결하려는 관행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시장을 만나겠다는 면담요청자가 500명을 넘어 책으로 한 권이 된다”며 “만나면 귓속말을 하려 하고 봉투를 주려는 일이 너무 많아 CCTV를 달았다”고 털어놨다.
CCTV는 기본적으로 청탁 방지 효과를 노린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지난해 취임 뒤 구청장실에 CCTV를 설치한 진익철 서울 서초구청장도 이런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장은 “어떤 이는 400만~500만원은 든 것으로 보이는 두툼한 봉투를 꺼내다 내가 CCTV를 딱 가리키니 멈칫하더라”며 구체적인 사례까지 소개했다.
이 시장은 “(봉투나 청탁이) 거의 없어졌지만 아직도 그러는 사람들이 이따금 있다”고 혀를 찼다. 만약 CCTV를 달지 않았으면 봉투를 들고 찾아올 사람이 줄을 섰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들이 시장에게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의 결재 하나에 수십억원, 수백억원짜리 사업의 운명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시장은 “시장 권한이 너무 커 감시와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며 “사업 방식 결정에 따라 혜택을 보는 사람이 바뀌지만 어떤 안으로 해도 시장에게는 큰 차이가 없다. 끊임없이 유혹에 노출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성남=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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