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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시로 여는 아침] "이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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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시로 여는 아침] "이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

입력
2011.06.12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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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르 바예호

“이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라고 너는 내게 말한다. “다 가버렸어요. 응접실, 침실, 정원에는 인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떠나버려서 아무도 없지요.”

나는 네게 이렇게 말한다. 누가 떠나버리면, 누군가가 남게 마련이라고. 한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이제 아무도 없는 곳이 아니라고. 그저 없는 것처럼 있을 뿐이며,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곳에는 인간의 고독이 있는 것이라고. 새로 지은 집들은 옛날에 지은 집보다 더 죽어 있는 법. 담은 돌이나 강철로 된 것이지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집을 짓는다고 그 집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집에 사람이 살 때에야 비로소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집이란, 무덤처럼,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지. 이것이 바로 집과 무덤이 너무너무 똑같은 점이지. 단, 집은 인간의 삶으로 영양을 취하는 데 반해서, 무덤은 인간의 죽음으로 영양을 취한다는 게 다른 거다. 그래서, 집이 서 있고, 무덤은 누워 있는 법.

모두들 집에서 떠났다는 것은 실은 모두들 그 집에 있다는 것. 그렇다고 그들의 추억이 그 집에 남은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이 그 집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그 집에서 산다는 말은 아니지. 집으로 인해 사람들이 영속할 수 있다는 것일 뿐. 집에서 각자 맡았던 일, 일어났던 일 같은 것은 기차나 비행기, 말 같은 것을 타고 떠나거나, 걸어가 버리거나, 기어서라도 떠나버리면 없어지지만, 매일매일 반복해서 일어나던 행동의 주인이었던 몸의 기관은 그 집에 계속 남는 법. 발자취도 가버렸고, 입맞춤도, 용서도, 잘못도 없어졌다. 집에 남아 있는 건, 발․ 입술․ 눈․ 심장 같은 것. 부정과 긍정, 선과 악은 흩어져버렸다. 단, 그 행동의 주인만이 집에 남았을 뿐.

● 독립하고부터는 2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했어요. 가는 동네마다 모두 옛 집들을 몽땅 부술 채비를 하기 때문이죠. ‘다들 왜 이러는 거야?’ 투덜대다가도 가난한 이의 푸념 같아 그만 둡니다. 하지만 시인은 손익을 따져 묻는 이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네요. 집은 무덤처럼 사람의 영혼이 편안히 머무르는 곳이지. 그래서 새로 지은 집들은 옛날에 지은 집들보다 더 죽어 있는 법이란다. 우리가 살던 곳에는 아름답고 슬픈 추억들만 남아 있는 게 아니야. 그곳은 우리의 마음을 키워 준 몸과 같지. 몸이 제 스스로를 허물어뜨리기 전에 우리가 결코 몸을 떠날 수 없듯이 집도 그런 곳. 함께 살 사람을 만나지 못해 텅 비어 있는 새 집과 건물들. 그 장소들에 생명을 넣어 줄 수 있는 건 정말 황금의 마술지팡이밖에 없는 걸까요? 바예호의 시를 읽으며 되물어 봅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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