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눈알의 왼쪽 부분이 심하게 붉어져 안과에 갔더니 상처가 나 염증이 있다고 했다. 과로하여 난 상처라고 했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세 종류의 안약을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인공누액, 말하자면 ‘가짜 눈물’이었다. 수시로 가짜 눈물을 짜 넣다가 눈물샘에서 나오는 ‘진짜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눈물이 많았다. 초등학교 4학 때 아버지를 여의고 툭하면 눈물을 흘리던 아이였다. 동화책을 읽다 슬픈 장면을 만나면 책에다 얼굴을 묻고 주인공처럼 울었다. 슬퍼서 울고 기뻐서 울었다. 분노를 참지 못해 울었다. 꿈속에서도 자주 울어 꿈에서 깨면 베갯잇이 눈물에 흠뻑 젖어 있던 날도 많았다. 언제 내게서 그 많은 눈물이 다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건 역설적으로 우리가 사는 시대가 눈물이 없는 시대라는 증거일 것이다. 기쁨과 감동으로 울 일보다 짜증스럽고 분노할 일이 더 많은 세상을 살다 보니 눈물샘이 바짝 말라 버렸을 것이다. 가짜 눈물을 짜 넣고 눈물 연기를 하는 연기자 같은 사람들 속에서 진짜 눈물을 보기도 귀해졌다. 예전엔 상가(喪家)에서 눈물과 울음을 팔던 곡비(哭婢)라는 직업이 있었다는데 눈물을 대신 흘려 주는 신종 직업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울고 나면 후련해지는 진짜 눈물 펑펑 울어 보고 싶은데 어느새 나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마른 안구의 중년이 되어 버렸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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