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로부터 약사법 개정을 서면으로 지시받은 보건복지부가 감기약 등 일반의약품(OTC)의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 검토에 들어갔다. 복지부는 시기를 정확히 못박지 않았지만 올해 정기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일 기자실에 들러 "청와대와도 상당히 논의를 해왔다"며 "대통령도 의약품 분류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는 좋다 하셨지만, 약사회가 당번약국 확대하는 것까지 굳이 복지부가 같이 하면서(보도자료에 자세히 써서) 마치 밖에서 보면 약사회에 휘둘리는 것처럼 비친 것에 대해 아쉬워하셨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계속 의약품 (재)분류를 통해 하겠다는 취지에 변함이 없었는데, 보도자료나 브리핑 과정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지난 3일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관련 브리핑에서는 약사법 개정에 부정적이고 불분명한 태도를 보였었다.
진 장관은 개정안을 올해 정기국회에 제출할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서면지시까지 한 점으로 미뤄볼 때 정기국회 제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식약청 자문기구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중앙약심)를 통해 의약품 재분류 작업을 조만간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약사법상 의약품은 전문의약품, 일반의약품, 의약외품 3가지로 나뉜다. 의약외품은 약국 외에서 팔 수 있지만, 전문ㆍ일반의약품은 약국 또는 약사들이 지정한 대리인이 특수장소에서만 팔 수 있다. 때문에 약사들의 동의 없이 진통제나 종합감기약 등 일반의약품을 편의점 같은 약국 외에서 팔려면 약사법 개정을 통해 그런 약들을 별도의 범주로 규정하는 약품 재분류가 필요하다. 진 장관은 "일반의약품 중에 (약국 외에서 팔 수 있는) 카테고리를 하나 더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는 일부 드링크제나 소화제는 고시를 바꿔 의약외품으로 재분류하면 법 개정 전이라도 편의점 등에서 팔 수 있다.
그러나 의약품 재분류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 일반의약품만 1만7,269개(2009년 기준)에 이른다. 더구나 약사회는 전문의약품 일부를 의사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으로 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 대목에서 의사와 약사의 이익이 상충한다. 일반의약품 가운데 약국 외 판매가 허용될 품목도 매우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는 "밤에 갑자기 필요한 가정상비약은 상식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해열제나 감기약 등이 우선 거론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또 "약국 외 판매 대상을 고를 때 가장 큰 기준은 안전성과 부작용 여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감기약 중에서는 중추신경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등의 품목도 많기 때문에 중앙약심에 참여하는 전문가들 사이에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날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에 대한 당정회의도 열렸다. 여당 의원들은 진 장관에게 "왜 사전 논의도 없이 (이러저러한 방침을) 불쑥 발표하느냐"며 항의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당정은 약 슈퍼 판매를 위해 약사법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며 "소화제 드링크제 등 법 개정이 필요 없는 약부터 판매를 시작한 뒤, 감기약 해열제 판매를 위한 법 개정을 6월에 바로 할 것인지, 여유를 갖고 할 것인지는 좀 더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는 이례적으로 비공개로 진행됐고, 여당의원들 대부분은 약사회를 의식한 듯 회의 결과에 대해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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