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론의 발로인가, 기강 확립인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며 "부정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쏟아낸 일성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삼성 내에서 조차 이 회장 의중 파악이 엇갈린다.
10일 삼성에 따르면 그룹 내에서도 이 회장의 질타를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는 안팎의 경영 상황을 감안한 위기 의식으로 보고 있으며, 일부는 경영 복귀에 따른 기강 확립이라는 해석이다.
위기론으로 보는 쪽은 그룹 주요 사업의 경쟁 심화와 정치적 상황을 들고 있다. 그룹의 핵인 삼성전자가 벌이는 휴대폰, TV, 반도체 등 주요 사업의 시장 상황이 예전과 달리 녹녹치 않다. 스마트폰으로 시장의 돌파구를 마련한 애플 HTC 등 신흥 강자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반면 한때 휴대폰과 TV에서 1위였던 노키아 소니 등 기존 강자들은 시장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여기에 초과이익공유제, 동반성장 강화 등 대기업을 향한 정치권의 주문도 만만치 않다. 삼성 관계자는"단순한 내부 부정문제라면 (이 회장이) 굳이 언론에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지는 와중에 내부 비리 청산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고 청와대 등 정치권에서 강조한 동반성장 의지를 강하게 표출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따라서 이 관계자는"원래 내부 감사는 경영 진단이라는 이름으로 수시로 진행된다"며"계열사별로 경영진단하며 그룹 전체의 사업 방향을 다잡을 수 있다"고 전했다.
반면 기강 확립으로 보는 쪽은 사업의 경직을 우려해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계열사 관계자는"경영 환경에 대한 위기는 수 차례 언급했다"며"이번에는 내부를 향한 질책"이라고 풀이했다. 특히 이 회장이 깨끗한 조직 문화를 직접 강조했기 때문에 기강 확립 차원에서 조직 운영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직 삼성 내에서 대대적인 사정 움직임은 일고 있지 않다. 그룹에 따르면 당장 감사팀에 인력 변화가 일어나거나 특정 계열사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내 분위기는 잔뜩 긴장된 상태다. 평소와 달리 전화를 받는 직원들의 소곤거리는 듯한 낮은 목소리에서 긴장감이 묻어난다. 삼성 관계자는 "어떤 변화가 있을 지 모르니 긴장할 수 밖에 없다" 고 말했다.
한 켠에서는 뜻밖의 부작용도 우려하고 있다. 경쟁 관계인 협력업체나 내부 직원들 간에 음해 등 위기 상황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경우다. 삼성 관계자는 "몇 년째 사이버 감사팀을 운영하면서 제보 못지 않게 부정확한 음해도 많았다"며"특히 거래 관계인 경쟁업체를 탈락시키기 위한 협력업체들의 투서나 직원들끼리 음해를 하는 등 정확히 옥석을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삼성에서는 이 회장의 지적이 이례적인 만큼 큰 폭의 변화를 예상하고 있다. 일부 계열사에서 수십 명이 징계를 당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 감사 결과에 따라 삼성테크윈처럼 때아닌 사장 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보니 계열사들은 삼성테크윈에 이어 다음 타자가 어디가 될 지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그룹에 따르면 3월에 삼성테크윈 뿐 아니라 삼성전자도 내부 감사를 이미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계열사는 직원들의 법인 카드 사용과 거래처 약속 등을 각별히 챙기면서 몸을 사리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어떤 변화가 일어날 지 예측하기 힘들지만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긴 시간을 갖고 점검하면서 그에 따른 후속 조치가 있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허재경기자 rick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