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기에 재외동포언론의 기자로서 인터뷰했다. 이때 이대통령은 "LA 한인회장은 미국정부가 뽑는다"고 말해 듣는 사람을 놀라게 했다. 동포사회 현안에 대답하다가 한인회장 선거 후유증으로 걸핏하면 송사를 벌이는 폐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인회장을 미국법원 판사가 결정한다는 말은 동포사회 항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시기에는 한인회장대회에 참석했던 인사들이 관행적으로 청와대 초청을 받았다. 인원이 300명에 이르다 보니 30여명 단위로 조를 짜서 사진을 찍었다. 대통령은 여러 차례 사진을 찍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한번도 초대하지 않았다. 초대는커녕 취임 첫해를 빼곤 한인회장대회에 나오지도 않았다. 보수성향의 동포사회를 홀대하는 보수정권이 의아하다. 원인이 무얼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과거 이대통령의 말이 떠오른다.
그의 의구심이 들어맞는 것일까. 지난달 28일 실시된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 선거가 부정시비에 휩싸였다. 시카고의 개표현장에서 패배한 후보 쪽이 부정투표 증거들을 들이대면서 소란이 일어났다. 현지 경찰이 두 번이나 출동한 끝에 입건돼 결국 미국정부의 결정을 기다리게 됐다는 소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번 LA 한인회장 선거에서 낙선자의 불복으로 두 명의 한인회장이 나타나 망신살이 뻗쳤다. 유럽한인회도 두 개로 나뉘어져 있어 동포행사를 준비하는 기관에서는 어느 회장을 초청해야 할지 난감해 한다.
한인사회의 스캔들은 대부분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다. 비민주적 비합리적 정관도 분란의 원인이다. 그래서 몇 해 전 LA 한인회장 선거 중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관리를 위탁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 현대사의 신탁통치가 연상됐던 것일까. 선거관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라는 주장 때문에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미주한인회총연합회 부정선거 논란을 누구보다 더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내년에 처음 실시될 재외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선관위 관계자들이다. 부정선거가 우편투표과정에서 나타났다는 점에서 재외선거에 우편투표 도입을 주장해온 사람들도 할말을 잃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대로 내년 재외선거도 부정논란에 휩싸일 것인가. 그래서 선거무효 주장이 제기되고 선관위가 문책당하고 재외국민은 민주주의 훈련이 안된 이등국민으로 낙인 찍힐 것인가.
전세계 130여 개국에 걸쳐 700여 개의 한인회가 있고 회장은 2년마다 선거로 선출된다. 1년에 대충 350번의 선거가 있으니 하루에 한번 꼴이다. 한인회장 선거는 추문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민주주의를 훈련하고 학습할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그래야 재외선거에 불안의 눈길을 보내는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
선관위의 선거관리 능력은 다른 나라와 견줘봐도 우수한 편이다. 그런데도 내년에 처음 치르는 재외선거를 앞두고 불안해하고 있다. 한인회장 선거관리를 선관위에 위탁해보자. 한인사회는 공정선거와 선거관리 노하우를 얻을 수 있고, 선관위는 한인회장 선거를 관리하면서 재외선거에 대한 경험을 얻을 수 있으니 서로가 좋은 것 아닌가. 그래서 한인회장들에 대한 대통령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확인시키자. 14일부터 열리는 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 이런 문제도 논의하기 바란다.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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