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간 비밀접촉 내용을 까발린 데 이어 9일에는 접촉 당시의 녹음기록을 공개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나섰다. 비밀접촉 폭로에 대해 남측 정부의 해명이 '동족 기만과 모략날조'여서 접촉 전 과정에 대한 녹음기록을 공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외교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당국간 비밀접촉 폭로도 모자라 녹음기록까지 공개하겠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다. 두고두고 남북관계에 후유증이 클 자해행위이다.
북측은 절대숭배 대상인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의 사진을 남측 군부대 일부에서 사격훈련 표적지로 사용한 것 등에 격앙, 더 이상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중ㆍ장기적으로 남북관계를 되살릴 수 있는 씨앗까지 뭉개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처사다. 이명박 정부와 강경보수 간 또는 여야 갈등 등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라면 허망한 기대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박지원 민주당 의원 등 전 정부 인사들이 앞장서 비밀접촉 폭로와 녹음기록 공개 위협을 비난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미숙한 대응에도 문제가 많다. 경색일로인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기 위해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비밀 접촉을 통해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끊임없이 북한체제를 흔드는 혼란된 신호를 보낸 것은 잘못이다. 또 북측의 비밀접촉 폭로에 허둥대다 정상회담 추진이 아니라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기 위해 접촉했다는 식으로 둘러댄 것도 실수였다. 보수강경세력이나 야당의 비난을 의식해서였는지는 모르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 것과 다르지 않다. 북측이 너무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약점을 스스로 만들어 준 셈이 됐다.
정부는 보다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비밀접촉의 취지와 목적을 밝히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면 될 일이다. 구차하게 말꼬리를 돌리거나 둘러대다가는 점점 북측의 전술에 말려들 뿐이다. 북측이 공개하겠다는 녹음기록이 얼마나 구체적인지는 모르나 물증을 갖고 있다는 측과 진실게임을 벌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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