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통속극의 대모'로 국민 작가 대우를 받는 왕리핑(王麗萍)씨와 '이산' '동이'의 스타 작가 김이영씨가 10일 만났다. 중국에서는 멜로 드라마 등 한국 통속극이, 한국에서는 주로 중국 역사극만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와 반대 이력으로 활동해 온 이들은 자국에서는 히트 작가지만 상대국에는 이름을 알릴 기회가 없었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주최로 열린 6회 아시아드라마컨퍼런스(9, 10일)에 참가한 두 작가는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가 교류되길 바란다"며 우선 서로의 작품을 자국에 소개하자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판관 포청천'이나 '의천도룡기' 등 중국 작품은 극소수의 역사극이 전부였는데 이번 컨퍼런스에서 소개된 왕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인생'으로 처음 중국 가족 드라마를 알았다"며 "신선하고 한국에서도 충분히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왕씨도 김씨처럼 젊은 여성작가가 쓴 역사극이 궁금하다고 했다.
왕씨는 TV뿐 아니라 DVD를 통해 한국 인기작들을 거의 다 섭렵한 열혈 팬이다. " '찬란한 유산''파리의 연인' '불꽃'이 인상 깊어요. '아내의 유혹'도 재미있게 봤죠." 왕씨는 "드라마는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해야 하는데 한국 드라마는 참 낭만적이고 동화처럼 예뻐서 좋다"며 보면서 많이 공부한다고 했다. 좋아하는 한국 배우로는 이영애 전지현 등을 꼽았다.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 진실된 표정이 나오는 게 한국 배우들의 장점이죠."
중국에서 한국 트렌디 드라마들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데 반해 한국 내 중국 드라마 바람은 아직 미약하다. 김씨가 "1990년대 장안에 화제가 됐던 '판관 포청천' 방영 때는 개작두를 대령하라는 말이 대유행이었다"고 설명하자 왕씨는 "아주 오래된 드라마네요"라며 아쉬움을 보였다. 김씨의 작품들 역시 일본 대만 등지에 수출돼 인기를 끌었지만 중국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김씨는 "서로 선망할 수 있는 문화 코드를 보고 드라마를 수입하는데 아무래도 중국의 방대한 역사 스케일에 비해 한국 역사극이 별로 매력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국 드라마보다 세련미가 덜하다는 이유로 중국 트렌디 드라마나 연속극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왕씨는 "한국 작가들은 하루에 얼마나 쓰죠" "드라마 한 편당 제작비는요" 연신 질문을 던졌다. 완벽한 사전제작이 관례인 중국 드라마에 반해 당일치기 식으로 제작되는 한국 드라마 현실에는 혀를 내둘렀다. 김씨가 "드라마를 쓸 때는 세수도 일주일에 한번이나 할까 할 정도로 시간이 없다. 44시간 동안 못 자기도 했다"고 하자 왕씨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아침에 집중해서 4시간 정도 쓰고, 수영 하고 쇼핑 하고 이후에 친구를 만나는 게 보통 일과"라고 말했다. 김씨는 "매번 사지에 몰려서 초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 처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아야 잘 써지기도 한다"며 웃었다. 김씨가 "한때 몸무게가 36 kg까지 나간 적도 있다"고 털어놓자 왕씨는 "나는 스트레스 받으면 먹는 스타일이라 오히려 살이 찐다"고 했다.
서로 궁금한 게 많은 이들은 때로 메모를 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경청했다. 행사 일정 때문에 자리를 떠야 할 시간이 되자 왕씨는 김씨에게 사진을 찍자고 청하며 아쉬워했다. 한 시간 만에 마음이 통했을까. 왕씨는 "비행기로 1시간 4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상하이(上海)에 꼭 놀러 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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