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1,000만원 시대라고 하는데, 1,000만원은 일반 노동자 1년 연봉의 절반이다. 딸에게 등록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기 위해 함께 나왔다.”
10일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청계광장을 고등학생 딸과 함께 찾은 시민 안종환(50)씨는 이렇게 말했다.
6ㆍ10항쟁 24주년을 맞은 이날 서울 도심에서 반값 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며 열린 ‘6ㆍ10 국민촛불대회’에는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등학생, 학부모 등 일반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지난달 29일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후 13일째인 이날 최대 인원인 2만여명(경찰 추산 5,000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현장에 모였다. 주최 측은 참가자들을 5만여명으로 추산했다.
지난 8, 9일 이틀간 동맹휴업 찬반투표를 진행한 고려대 서강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 서울지역 4개 대학 중 숙명여대를 제외한 3개 대학은 정족수 미달로 동맹휴업이 무산됐지만, 학생들은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촛불집회 현장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윤진희(20)씨는 “동맹휴업 투표를 했지만 기말고사가 겹쳐 학우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것 같다. 우리 학교에서 내 전공인 중문과가 등록금이 제일 싼 편이라, 500만원 넘는 돈을 내는 예체능계 친구들 앞에서는 하소연도 못한다”며 “비싼 등록금 때문에 나보다 더 고생하는 다른 친구들에게 힘이 되고자 나왔다”고 말했다.
백일(25ㆍ건국대)씨는 “등록금 인상률이 물가인상률보다 2~3배 높은 현실은 정상이 아니다”라며 “돈 있는 사람만 인정받는 사회에 환멸을 느껴 참여하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수(21ㆍ고려대)씨는 “지난달 29일 집회에 참석했다가 연행됐지만 오늘 다시 나왔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며 “지난주에는 대학들이 시험기간이라 주춤하는 듯했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반값 등록금을 향한 촛불은 더 활활 타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에는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등학생과 40~50대 학부모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다. 고3 학생인 송현아(18)양은 “대입 공부하기도 바쁘지만 고등학생도 비싼 등록금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의사 표현을 하고 싶어서 일부러 나왔다”며 “내년이면 대학에 가는데 군대 간 오빠까지 제대해서 같이 대학을 다니게 되면 너무 부담될 것 같다. 벌써부터 부모님께 불효하는 마음이 든다.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중학생 딸과 함께 나왔다는 박윤정(42)씨는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는 사람이 곧 자원인데 아이 하나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나”라며 “저출산 문제도 따지고 보면 다 비싼 등록금 등 아이 키우기가 어렵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를 비롯해 야4당 대표 등 정치인들도 집회에 다수 참석해 대학생들의 요구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촛불집회에 앞서 열린 정당연설회에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야당이 대통령 공약 지키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4대강 말고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건물만 높이 멋지게 짓는다고 대학이 아니다”라고 정부에 날을 세웠다.
앞서 오후 1시에는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강기갑 의원, 심상정 전 의원이 청계광장 앞에서 반값등록금 실현 촉구를 위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노회찬 전 대표는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엄정 대응하겠다는 경찰 방침에 대해 “3ㆍ1운동, 4ㆍ19혁명, 6월항쟁도 미신고 집회였다. 역사발전은 미신고 집회를 통해 이뤄졌다”며 “경찰은 탄압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후 7시 본 행사 시작 후 주최 측인 등록금넷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대학생들은 자유발언을 이어갔고, 노래패 등의 공연도 펼쳐졌다.
학부모단체와 여성계의 참여도 이어졌다. 반값등록금학부모모임은 이날 무대에 올라 ‘반쪽 사과’ 500여 개를 나눠주며 학생들을 응원했다. 정명수 학부모모임 대표는 “학생들한테 이런 상황을 만든 데 대해 기성세대로서 사과한다는 의미에서 준비했다”며 “반쪽 사과를 나눠먹으면서 반쪽등록금을 관철시키자”라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6개 여성단체는 촛불집회 시작과 동시에 반값 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연맹 조합원들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주먹밥을 만들어줬고 전국농민회총연맹은 가래떡 160kg을 준비해왔다.
이날 집회를 불법 집회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할 것을 예고했던 경찰은 등록금넷 등이 신고한 청계광장에서의 집회를 사실상 허용했다. 경찰은 대신 인근에 5,000명의 병력을 배치해 도로 점거 및 행진 등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집회 참가자 2,000여명은 집회가 끝난 뒤에도 청계광장을 벗어나 서울광장 명동 등에서 산발적으로 시위를 하고, 숭례문 시청 방향으로 행진을 이어가다 을지로입구역 등에서 대기하던 경찰 저지선에 막혔지만 이후 큰 충돌 없이 자진 해산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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