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왜 피처(투수)는 보크(balk)를 하는 걸까. 왜 보크를 하다가 들키면 상대 주자들을 거저 1루씩 가게 해 줄까. '반칙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유혹'에 대한 제재 장치다. 투수에게 투구(投球)와 송구(送球)는 자세부터 엄밀히 구별되는 동작이다. 수많은 송구 가운데 투수가 타석을 향해 '한 번 쳐봐라'며 던지는 게 투구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선 그 1~2초야말로 수비ㆍ공격 팀과 관중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이다. 그러니 송구하는 척하며 투구하거나 투구하는 자세로 송구하여, '긴장의 미학'을 해치는 짓은 안될 일이다.
■ 스포츠에서 긴장된 순간에 규칙을 어기게 되는 경우는 (당사자의 고의든 과실이든) 없을 수 없다. 축구에서 페널티킥이나 프리킥을 하는 경우 직전의 움직임을 규제하고, 육상경기 트랙종목에서 스타트라인을 엄밀히 감독하며, 배드민턴이나 탁구에서 서비스하며 상대방을 현혹하는 동작을 금지하는 것 등이 '보크'라는 이름으로 규정돼 있다. 방해라는 의미의 보크는 상대방(혹은 관중)의 예상에 장애를 일으켜 정확한 대응을 못하게 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다. 야구에선 투수의 행동을 제약하려는 목적보다 주자의 행동을 도와주기 위한 규정이다.
■ 8일 잠실경기장의 LG-한화 게임에서 보크 논란이 빚어졌다. 한화가 5-6으로 지고 있던 9회 마지막 공격, 2사3루 상황에서 일어났다. 보크로 인정됐으면 6-6으로 경기가 이어졌겠지만, 항의하고 검토하는 사이 경기는 끝났고 상대팀은 이미 그라운드를 떠난 상황이었다. 2004년 5월 문학구장 SK-롯데 게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롯데가 6-7로 지고 있던 8회 공격에서였는데, 롯데 감독의 항의로 보크가 인정돼 7-7이 됐다. 당시엔 9회까지 경기가 이어져 논란이 마무리됐지만 이번엔 그것으로 게임이 끝나버렸기 때문에 논란은 계속되고 더 확산됐다.
■ 논란을 수습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우선 심판들의 자세다. 3루 주자의 깜짝 도루를 관찰하느라 4명 모두가 투수의 자세를 놓쳤음을 알고 상당한 징계를 감수하며 오심을 인정했다. 한화의 대응도 그렇다. 한대화 감독은 KBO측의 공식 사과를 받아들여 제소하지 않기로 했으며, 분통을 터뜨리는 선수들에게 내부적으로 (성적평가 등에서)패전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다독거렸다. 정승진 한화이글스 대표는 앞으로는 보크도 비디오 판독을 하면 어떨까 하는 개선책을 내놓았다. KBO도 검토해보겠다고 화답했다. 프로야구가 팬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겠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