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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강의를 찾아서] 박해천 홍익대 BK 연구교수 '콘크리트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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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강의를 찾아서] 박해천 홍익대 BK 연구교수 '콘크리트 유토피아'

입력
2011.06.1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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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아파트란 무엇인가… 그 역사와 문화

우리나라 아파트의 효시는 1964년 등장한 서울 마포아파트다. 35년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아파트가 있긴 해도 대규모 단지형으로는 마포아파트가 최초라고 건축전문가들은 말한다. 일각에서는 5ㆍ16 군사 쿠데타의 주역들이 국가, 성장 등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지었다는 시각도 있으나, 어쨌든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한국의 독특한 아파트 문화는 시작됐다.

아파트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디자인 연구 전문가인 박해천 홍익대 BK 연구교수는 "아파트는 우리의 삶과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주거공간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 즉 역사성과 문화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비주얼아트센터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한국의 아파트가 갖고 있는 의미를 독특하게 풀어냈다. 게임문화재단과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주관하는 '게임문화 아카데미' 인문교양강좌의 하나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그는 "아파트는 주거 유행을 창조했고, 사람들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60년대는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이 가능한지 실험하는 기간이었다.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공동주거지 개념이 생소했던 시대에 주택공사가 처음 시도한 아파트는 뜻밖에 중산층들이 찾으면서 성공을 거뒀다. 박 교수는 "주공이 그때 뿌렸던 마포아파트 홍보물을 보면 교복을 입은 초등학생들이 뛰어 노는 모습이 있다"면서 "당시 교복은 사립학교만 입었기 때문에 마포아파트에 중산층이 꽤 살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6개 동 모두가 'Y'자 형태로 똑 같은 모양이어서 틀에 박힌 군사문화를 연상시키는 측면도 있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마포아파트의 성공이 70년대 서울시가 추진한 시민아파트 건설로 이어졌으나, 접근 방식은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마포아파트는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의 가능성 여부를 시험하는 무대였던데 반해 시민아파트는 달동네를 개조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다는 것이다. 시민아파트는 출발부터 도시 빈민 거주지라는 계획하에 추진됐다는 설명이다. 그래서였을까. 시민아파트인 와우아파트가 부실시공으로 70년 4월 무너졌다.

이로 인해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대안으로 70년대 초반부터 전망 좋고 품질 좋은 고급아파트가 등장했다. 그게 여의도와 용산구 이촌동 일대, 옛 반포 지역 등 한강 주변에 들어선 소위 한강 맨션아파트들이다. 그는 이 3곳을 '맨션의 트라이앵글'이라고 했다. 이는 당시 경제 상황과 맥이 닿아 있었다. "한강 맨션은 기존의 아파트와는 달랐다. 이전까진 60㎡ 정도가 가장 컸으나 한강 맨션은 99㎡에서 165㎡까지 지어졌다. 일본은 이때 경제호황을 누렸고, 우리도 고속도로가 만들어졌고 국산 포니차가 선을 보이는 등 고속성장기에 접어들었다. 경제발전이 중ㆍ대형 아파트를 짓게 만든 동력이었던 셈이다."

75년께부터 시작된 강남 개발은 '한강 맨션의 트라이앵글'이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반포, 서초, 잠실, 압구정 등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아파트가 속속 등장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주목하라고 했다. 맨션의 트라이앵글과 강남의 아파트 단지를 잇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아파트에 대한 관점을 크게 바꿨다. 한강 맨션이 주거목적이었다면 현대아파트는 자산가치를 염두에 둔 소유, 투자의 측면이 강했다. 현대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의 20~30%가 용산과 여의도 거주자들이었다."

70년대 이런 강남지역 아파트 입주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40년 이후 출생자로 지방의 명문고 출신에 꽤 큰 기업체에 다니거나 고급공무원이 적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한 세대였는데, 이들이 내 집 마련을 하는 시점에 강남에 정착한 것이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한강 맨션과 강남의 아파트 단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박 교수의 분석은 명료했다. "한강 맨션이나 여의도 아파트촌은 서울 토박이 출신의 젊은 중상류층이 기존의 계층 질서를 재생산하는 과정의 산물이었다. 반면에 강남의 아파트 단지는 서울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지방 출신의 젊은 세대들이 내 집 마련과 함께 신흥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이들이 80년대 중반까지 주로 서울 외곽 지역에서 강남 아파트로 진입해 경제 성장을 주도하면서 이른바 '영동 문화'를 형성했다."

그는 90년대 이후 형성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화에서도 아파트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 부모를 따라 처음 강남 아파트에 발을 들여놓은 70년대생, 90년대 학번들이 우리 문화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서태지, 김현철, 성시경, 싸이 같은 가수들은 모두 강남 2세대다. 이들의 공간 감각과 시각적 감각은 일반인과 확연히 다른 부분은 쉽게 목도된다." 강남 8학군의 교육열 또한 아파트가 초래했다고 파악했다. 학력과 경제력이 비슷한 중ㆍ상류층들이 강남 아파트 단지에 대거 입주하면서 자녀를 좋은 학교로 보내기 위한 부모 간의 경쟁이 자연스럽게 시작됐다는 것이다. 조기유학의 진원지도 따지고 보면 아파트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아파트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박 교수는 역할이 점점 무뎌지고 있다고 했다. 금융위기가 몰아닥친 2008년 이후엔 자산형성 수단으로서 아파트의 비중은 약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중산층이 아파트를 통해 자산을 축적하는 흐름이 차단됐고, 특징적인 아파트 문화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쯤 되면 아파트가 아닌 다른 주거에 눈을 돌려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요즘 세대들은 도시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지녀야 한다. 다양한 주거문화, 형태에 그들만의 시각을 갖는 것이다. 다양한 주거 공간들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 왔다."

■ 마포아파트에서 타워팰리스까지

우리나라 주거문화의 중심엔 아파트가 있다. 한국전쟁 이후 고속 성장의 과정에서 나타난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수도권 집중은 주택난을 유발시켰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탄생한 게 공동주택이었으며 그 핵심은 아파트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규모 공동주택은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들어선 마포아파트다. 62년 창립된 대한주택공사(현 LH)가 지었다. 6층짜리 10개 동에 642가구였다. 마포아파트는 당시 영화 촬영장소로 인기가 높았고, 아파트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계기가 됐다.

국내 최초의 고층아파트는 68년 한남동에 건축된 힐탑아파트(남산외인아파트)로 기록된다. 당시 아파트들이 대부분 5~6층이었지만 이 아파트는 11층이었다. 한때 서울의 명소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국내 아파트가 질적으로 도약한 것은 71년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다. 9만㎡ 부지에 12~13층짜리 1,584가구에다 국내 첫 중앙난방 시스템과 엘리베이터를 선보였다. 단지 안에 학교와 공원, 쇼핑센터 등 생활기반시설이 구비됐다. 박해천 교수는 "우리 건축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했다.

72년부터 81년까지 이어진 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가져왔지만, 필연적으로 서울의 인구집중을 초래했다. 주택난이 가중되자 정부가 손을 댄 것이 영동지구와 잠실지구로 대표되는 강남 개발이었다. 80년대 초부터 압구정동, 반포동, 잠실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섰고, 신시가지 역시 자연스럽게 조성됐다. 뒤를 이어 80년대 후반부터는 서울 목동신시가지와 상계신시가지 등이 모습을 드러냈으나, 주택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주택가격이 폭등했다. 이때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개 신도시 개발이었다.

90년대 말부터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이 붐을 이뤘다.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여의도 트럼프월드, 목동 하이페리온 등이 이 무렵에 지어졌다. 고소득 수요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한편으론 재테크 수단으로 지어져 평당 4,000만~5,000만원 아파트 시대를 열었지만, 최근 들어선 부동산경기 침체 때문에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 박해천

●197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홍익대 BK(두뇌한국)21 메타디자인 전문인력양성사업단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디자인 연구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아파트 연구에 관심이 많다. ●'한국의 디자인: 산업, 문화, 역사', '한국의 디자인 시각문화의 내밀한 연대기' 등을 기획 편집했다. ●주요 저서로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 <인터페이스 연대기: 인간, 디자인, 테크놀로지> 등이 있다.

김진각 편집위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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