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는 것 같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그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같은 날 제주에서 중소기업 사장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주 리더스 포럼'에서는 이 회장의 발언이 과장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언이 잇따랐다. 삼성 LG 현대차 SK 등 대기업과 거래하다 보면, 룸살롱ㆍ골프 접대는 기본이고 경조사 부조나 떡값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등 그보다 훨씬 심각한 비리가 횡행한다는 것이다.
철저한 조직 관리로 유명한 삼성에 부정부패가 심하다면 다른 그룹은 어떨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기업 임직원 비리의 원인은 분명하다. 이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협력업체 경영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등 불공정 행위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협력업체는 생존을 위해 대기업 구매 담당자 등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고, 비리의 먹이사슬이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다.
정부가 동반성장위원회까지 만들어 대ㆍ중소기업 상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는 여전하다. 3월 말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1,585개 1차 협력업체와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을 맺었던 현대ㆍ기아차는 과도한 납품단가 인하를 협력업체에 강요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직권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롯데ㆍ신세계ㆍ현대백화점에 입점한 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절반에 가까운 46.9%가 인테리어비용 부담 강요, 일방적인 거래가 인하 요구, 상품권 강매, 신설 및 지방점포 입점 강요 등 백화점 측의 불공정 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대기업 임직원의 비리를 막으려면 대ㆍ중소기업 간 거래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대기업 임직원이 거래과정에서 지나친 재량권을 행사하는 일이 없도록 내부 시스템을 투명하게 바꾸고, 단기 실적 중심인 임직원 평가방식도 과감히 바꿔야 한다. 말로는 동반성장을 외치면서 납품단가를 후려쳐 많은 이익을 낸 임직원을 포상하고 승진시키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불공정 거래 및 비리 행위가 고쳐질 리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