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열망'과 '경제적 욕구'는 어느 쪽이 더 강할까. 아랍권 민주화 시위가 '머니게임'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민주화 시위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경제력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 올 초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쓴 민주화 혁명의 첫 단계가 자유를 향한 무조건적 갈망이었다면 2단계는 '머니게임'이 될 공산이 커졌다.
'오일머니'로 잠재운 사우디아라비아
'1,300억 달러(141조원)'
사우디아라비아가 자국 내 민주화 혁명을 잠재우기 위해 쏟아부은 돈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아랍권 민주화 시위 속에서 사우디가 무풍지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오일머니 덕분"이라고 보도했다.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69) 국왕은 병 치료를 위해 미국과 모로코에서 3개월간 머문 뒤 지난 2월 귀국하자마자 민심수습용으로 거액을 풀기 시작했다. 당시 주변국에선 튀니지와 이집트 지도자가 퇴진하는 등 민주화 열기가 정점에 달했다. 압둘라 국왕은 무이자 주택담보대출, 가계부채 탕감, 공무원 임금인상 등의 민생지원책을 내놨다. 공무원들에겐 두 달치 월급을 추가로 지급했고, 저소득층에게 주택 50만채를 공급하기 위해 700억달러를 썼다. 종교단체에는 2억달러를 몰아줬다. 지난해 석유판매로 2140억달러를 벌어들인 것이 재원이 됐다.
화끈한 당근책 덕분에 사우디에선 지난 3월 시아파 주민 거주지를 중심으로 시위가 벌어진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소요사태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그러나 오일머니의 힘이 얼마나 지속될진 미지수다. 사우디 내에서조차 돈으로 여론을 무마하려는 전략이 지속되긴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왕의 동생인 탈란 빈 압둘아지즈 왕자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권력자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며 권력과 돈, 지위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이는 근시안적 태도"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머니게임 조짐 보이는 리비아 사태
리비아에서는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경제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출구전략에 골몰하고 있는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그리스에게 거액의 은밀한 제안을 한 것으로 드러나 주목된다. 영국일간 인디펜던트는 10일 리비아 당국자를 인용, 카다피 측이 그리스와 200억달러(21조6,000억원) 상당의 비밀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가 서방국가와의 평화 협상을 주선할 경우 카다피의 해외 동결 자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로 재정위기가 심각한 상태다.
이 당국자는 그리스와의 협상이 타결될 경우 정전은 물론 카다피 권력 이양의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방국가들이 평화 협상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카다피가 먼저 물러날 것을 요구하며 대화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관련, 돌파구를 마련해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거래가 성사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이를 눈치 챈 프랑스가 그리스에 협상 중지를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반카다피 시민군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연락그룹회의에서 서방국가로부터 11억달러(1조2,000억원) 상당의 지원 약속을 받았다. 포스트카다피 체제를 준비하기 위한 총알을 마련한 셈이다. 이탈리아는 긴급자금으로 6억달러를 지원키로 했고, 쿠웨이트는 1억8,000만달러를 즉시 보내기로 했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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