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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인코그니토' 내 안의 다른 누군가가 내 행동을 조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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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인코그니토' 내 안의 다른 누군가가 내 행동을 조종한다

입력
2011.06.10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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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코그니토/데이비드 이글먼 지음·김소희 옮김/쌤앤파커스 발행·320쪽·1만5,000원

남성에게 여성의 프로필 사진을 여러 장 보여 준 후 가장 매력적인 이성을 선택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남성은 동공이 확대된 여성을 선택한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실험 결과다. 하지만 왜냐고 물으면 "그분의 동공이 다른 분들보다 2㎜나 더 크더라고요"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다. 이유를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특정한 여자들에게 더 끌린다고 느낄 뿐이다.

'나라고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서 시작해 사람의 판단 행동 선택이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무엇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책이 나왔다. 미국 베일러의대의 신경의이자 신경과학자인 데이비드 이글먼이 펴낸 <인코그니토(incognito)> 다. 이는 '익명의, 신분을 숨긴'이란 뜻으로 인간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또 다른 나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자전거 타기에서 총기 난사까지, 다양한 행동과 현상을 분석해 나를 찾아 가는 일종의 인간 탐험이다.

동공이 큰 여성에게 끌리는 심리의 근원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뇌가 여성의 확대된 동공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책은 어쩌면 미와 매력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뇌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수백만 년 동안 자연선택적으로 빚어진 프로그램에 의해 조종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가장 매력적인 이성을 고르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뇌 회로에 내장된 프로그램인 셈이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로 내면의 익명자를 논증해 나간다. 저자가 먼저 주목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뇌의 숨겨진 능력이다. 인간은 자신이 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전부 의식하지 못하며, 사실 대부분의 일들이 뇌의 좀비 프로그램에 의해 처리된다는 것이다.

"1862년 스코틀랜드의 수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전자기 방정식을 만들었다. 위대한 수학자는 죽음을 앞두고 방정식을 발견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기 안의 그 무엇이라고 털어놓았다. 대체 자신이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내놓았는지 모르겠다는, 그야말로 기묘한 고백이었다."

사실 이런 말을 한 것은 그뿐이 아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우리 내면에는 자신도 모르는 누군가가 있다"고 말했다.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도 "내 머릿속에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고 했다.

뇌의 지식과 우리의 인식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저자의 탐구 결과다. 한 예로 운전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핸들을 똑바로 잡은 후에 잠시 오른쪽으로 꺾었다가 다시 중앙으로 바로잡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실제로 차는 차도를 벗어나 점점 인도로 향하게 된다. 우리의 인식과 달리 실제 동작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고 다시 중앙으로 돌렸다가 왼쪽으로 그만큼 꺾은 후에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책은 무의식의 정체를 풀어내기 위해 뇌에 대한 고찰에까지 들어간다. 이는 5장 '라이벌들로 이루어진 팀, 뇌'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저자는 뇌는 단순한 뉴런의 정글이 아니라 세상과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적 네트워크라고 말한다.

"수십억 년 동안 인류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하는 동안 인간의 뇌도 자연선택을 거치며 가장 최적의 형태로 발전해 왔다. 인간의 놀라운 능력은 뇌라는 창조적이고 놀라운 기계 안에 일종의 프로그램처럼 새겨져 있다. 우리가 모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도, 바이올린을 멋지게 연주하는 것도, 모두 뇌의 덕인 것이다."

뇌과학 신경학 진화생물학 심리학 사회학을 총동원한 인간 연구 시도인 책은 단순히 뇌에 관한 지식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전에 비슷한 주제를 다룬 심리학 대중서들과 차별성이 있다. 모든 행동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면 범죄나 옳지 않은 행동을 저지른 사람에게 오롯이 책임을 물을 수 있냐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묻는 사회적 화두를 제시한다는 면에서도 의미 있는 책이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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