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수 있겠니/김인숙 지음/한겨레출판 발행ㆍ304쪽ㆍ1만2,000원
2만여개의 사원에 3,000여 신을 모시는 원시적 종교성을 간직하면서도 세속적 휴양지의 나른함이 교차하는 인도네시아 섬 발리. 소설가 김인숙(사진)씨는 지난해 6월부터 4개월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5년 전쯤 처음 방문했을 때 매료됐던 아름다움을 잊지 않았던 그는 여러 차례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입 밖으로 꺼내고 싶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김씨가 발리에서 집필한 <미칠 수 있겠니> 는 발리섬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소설의 주 무대라는 점 외에도 통속적 치정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 사랑과 배신의 파노라마에 다채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삶에 대한 갈증으로 고양시킨다. 미칠>
“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니”라고 따지는 진과 “그냥 되는 대로 살면 안돼? 그냥 미쳐서 살면 왜 안 되는데?”라고 반문하는 남편 유진 사이에 얽힌 7년 전 살인 사건의 비밀이 소설을 이끄는 중심 축. 발리에서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며 부인과 떨어진 유진은 집안 일을 도와주는 여자아이와 연인 관계를 맺는데 진은 남편을 찾아왔다가 이를 알게 된다. 여자아이에게 살의를 느끼는 진은 그러나 현장에서 정신을 잃고 만다. 그러는 동안 여자아이가 살해됐으며 여자아이를 사랑하던 현지인 댄서가 살인범으로 체포됐고 남편 유진은 사라지고 없었다.
7년 뒤 진이 남편을 찾아 다시 발리를 방문했다가 세상의 파국 같은 지진을 겪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진은 현지 운전수 이야나의 도움을 받아 살인 사건의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7년 전 기억과 지진이 밀어닥친 현재가 교차하는 이야기는 핏빛 미스터리의 긴장감과 사랑의 애잔함 등이 맞물려 유려하면서 흥미롭게 진행된다.
어찌 보면 살인 사건이 얽힌 통속적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를 고양된 감정으로 정화해 주는 장치가 발리라는 무대다. 과거와 현재, 미래 시제 구분이 없는 발리어,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주술사인 힐러 등으로 대표되는 발리는 소설 속에서 일상을 초월하는 신적 영원성이 숨쉬는 공간이다. 격정적 배신감과 과거에 얽매였던 진이 상처를 치유하고 남편 유진의 삶을 이해하며, 종내 이야나와 새로운 사랑을 맺게 되는 것도 발리인의 삶을 통해서다.
김씨는 “시제 구분이 없는 언어를 만든 삶에 대한 관심에서 이 소설은 출발했다”며 “신들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사원이 있으면서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독특한 섬사람들의 삶을 한국인인 나의 시점으로 바라보고 쓴 작품”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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