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의 도시인 진해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가까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일본 해군 관사가 있었다. 그 관사를 우리 해군도 관사로 사용했다. 그곳을 도만동 관사라 불렀다. 그곳에 친구가 있어 여러 번 놀러 갔었는데 관사 집집마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덕에 초등학교 등굣길은 탱자나무가 많아 즐거웠다. 탱자나무 가시는 좋은 장난감이었다. 가시를 꺾어 돌멩이로 콕콕 찍다 보면 껍질 속의 가시가 쏙 빠져나왔다. 마치 칼과 칼집 같아 누구의 칼이 크고 긴지 내기를 하곤 했다. 가을에 익는 노란 탱자 열매도 좋았다. 먹지는 못하지만 몇 개씩 따서 주머니에 불룩하게 넣어 다니며 심심하면 향기를 맡았다. 제주에 있다는 귤을 맛보지도 못했고, 그런 열매가 있다는 것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은현리에 초입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가진 빈집이 있었다. 그 가시나무를 통해 봄에 흰 꽃이 핀다는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 때는 가시에만 눈이 멀어 왜 꽃을 보지 못했는지 안타까웠을 정도로 예쁜 꽃이었다. 향기도 좋아 꽃 필 무렵에는 그곳에 한참 서 있기도 했다. 누가 새 건물을 짓는지 얼마 전 그 집이 헐렸다. 탱자나무 울타리만은 살기를 바랐는데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리운 것은 다 사라진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그립다. 고향엔 도만동 관사가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선지 오래다. 가시나무 울타리도 진작 사라졌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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