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와 문명/장 카스타레드 지음ㆍ이소영 옮김/뜨인돌 발행ㆍ362쪽ㆍ2만2,000원
사치는 잉여의 독특한 표현 양식이다. 실은 상대적 우월감의 표시거나 과시의 행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종교나 예술적 욕망보다 고상하지도, 열정적이지도 못하므로 속물적이라고 매도되기도 한다. 그러나 창조의 욕구와 결합할 때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양식화하기도 한다. 그 양상은 매혹적이며 때로 한 문화권 간의 구분선이 되기도 한다. 사치 너머 문명이 있는 것이다. 책은 사치를 시간적으로 정리했다.
이집트의 탐미적 사치, 히브리인의 종교적 사치 등 기원전 사치의 양상을 짚어 가다 로마에 이르러 "과도한 사치"라는 수사를 헌정한다. 잔인성과 관능을 탐하는 민족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불평등을 재확인하는 수단으로 사치를 이용한 로마인의 행태는 현대인의 탐욕성과 유사하다는 한다는 것이다. 외양에 대한 숭배, 안락과 먹거리에 대한 탐닉과 직결된 그들의 사치는 교훈을 제공한다. "여가와 사치가 노동의 열정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사회는 퇴조"(146쪽)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인도의 조화로운 사치, 이슬람교의 세련된 사치, 잉카의 경이로운 사치 등 사치의 전혀 다른 차원을 제시하면서 책은 소비와 동일시되는 사치란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와 더불어 아프리카의 마술적 사치, 중국의 철학적 사치, 일본의 절충주의적 사치에 각각 한 장씩을 할애, 사치란 문명과 직결된 양상일 수도 있음을 역설한다.
'이파네마'와 '코파카바나' 등 세계를 휩쓴 팝음악의 주요 소재가 된 거리를 한꺼번에 보유하고 있는 브라질을 비롯해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경제강국(BRICs)에서 번성 중인 사치 산업을 분석하며 책은 사치에로의 여행을 끝낸다.
저자는 명품 선호 욕구와 관련, 개인을 중시하는 경향과 더불어 재미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바로 "명품 소비를 통해 평범한 일상과 단절하고픈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그 속내에는 어떻게든 타인과 구별 지으려는 욕망이 도사린다고 저자는 말한다. 파리와 뉴욕에 버금가는 막대한 소비력을 지닌 일부 재력가들에게만 부가 집중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책은 결국 인간의 허영에 대한 감각적 개론서인 셈이다. 유럽 내 여러 박물관에서 받아쓴 정교한 사진이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경제학자면서 동시에 역사학자고 수필가다. 이 때문에 책은 객관적 역사서의 형태를 띠면서도 묘한 여러 울림을 선사한다. 인문과학 서적을 방불케 하는 논의 끝에 그가 내리는 결론은 일도양단식 주장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매우 불친절하다. 그는 "사치란 소유가 아니라 존재"라 한다. "사치란, 돈을 얼마나 썼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워졌는가 하는 기준으로 판단돼야 할 존재의 문제"라는 것이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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