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회계는 복마전(伏魔殿)이었다. 본보가 교육과학기술부의 2010년 사립대학 회계 및 종합감사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22개 대학에서 등록금 2,695억여원이 부당하게 지출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감독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 관계자 대부분에게 주의나 경고만 주는 등 솜방망이 처벌만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들은 학교 업무와 상관 없는 법인이나 부속병원 직원들의 인건비를 등록금에서 관행처럼 지출하고 있었다. 명지재단은 명지병원의 인건비 147억여원을 관동대 교비에서 지출했다. 길의료재단은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경원대의 전임교원 3~5명을 같은 재단 산하의 경원인천한방병원에 파견, 수업은 주당 평균 1.8시간 의학사 등 기초의학 강의만 하면서도 전임의 인건비인 6억9,904만원을 교비로 부담했다.
대학이 부담한 임대보증금을 부속병원이 가져간 곳도 있다. 길의료재단은 1992~2009년 서울 송파구의 한 건물을 임대해 부속병원으로 사용하면서 임대보증금 15억5,500만원을 교비에서 댔다. 2009년 이 병원이 이사하면서 보증금을 교비회계로 회수한 것까지는 정상적인 회계 처리였지만 이 금액을 다시 부속병원으로 넘겨준 것이 감사에서 적발됐다.
부당 지출에는 재단 이사장과 대학 총장들도 한몫 했다. 남서울대는 법인 업무와 관련 없는 이사장 개인비서의 월급과 차량 관리비, 신호위반 등으로 낸 과태료 등 1억원이 넘는 금액을 냈다. 또 법인카드로 사용하는 업무추진비와 별도로 총장에게 최근 3년간 매달 600만~900만원을 지급하는 등 보직자 63명에게 업무추진비 10억8,375만원을 인건비에 포함해 지급했다. 계명문화대는 2008년 대구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법인 이사장의 명예박사학위 축하연 비용 1,899만원을 교비로 내기도 했다.
규정에도 없는 수당으로 돈 잔치를 한 대학도 있었다. 대전대는 2007~2010년 부속병원 의료진 30여명에게 규정에 없는 진료수당을 책정해 30억6,415만원을 지급했다. 경복대는 2007, 2008년 교직원들에게 특별수당 명목으로 1억3,810만원을 나눠줬다.
학교 발전에 쓰라고 단체나 개인이 기부한 돈을 법인이 가로챈 사례도 많았다. 성신여대는 제2캠퍼스를 조성한다고 모금한 58억641만원 중 44억1,423만원을 법인이 가져갔다. 관동대는 스마트카드시스템을 구축하라고 하나은행이 기부한 90억원 전액을 법인 운영비로 사용하고 정작 시스템 구축 비용 31억2,143만원은 교비에서 지출했다.
학교 건물을 짓거나 장학금을 위한 적립금으로 주식투자를 하다 돈을 날린 대학도 있었다. 대구가톨릭대는 적립금 791억8,556만원을 이사회 의결도 없이 2005~2007년 주식에 투자해 98억8,975만원의 손실을 입었다. 이 대학은 2009년에도 이사회 승인을 받지 않고 200억원을 주식에 투자하다 감사에 적발됐다.
대학 보직자나 회계 감독자 수백 명이 의도적으로 등록금을 부당하게 사용했지만 교과부는 7명만 횡령 등의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했을 뿐 대부분 경고나 주의 조치만 주고 일을 마무리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사립학교법 등에 의거해 적정한 수준으로 처벌했다"고 해명했지만 경찰 관계자는 "대학의 살림을 투명하게 꾸려가야 할 사람들이 등록금으로 이득을 취했다면 업무상 배임을 넘어 포괄적인 횡령 혐의까지 둘 수 있다. 교과부는 좀더 적극적으로 수사를 의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학교육 관계자들은 사립대학들과 교과부의 끈끈한 관계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민주당 김유정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사립대학 석ㆍ박사 과정을 다니고 있는 교과부 직원 23명 가운데 자비 부담으로 대학원을 다니는 직원은 2명에 불과했고 전액(11명)이나 일부(10명) 장학금을 받는 직원이 대부분이었다.
김 의원실의 김종무 보좌관은 "대학들이 장학금까지 주면서 공무원들을 학교 동문으로 만들려는 것은 감사를 피하거나 감사에 적발됐을 때 방어막 역할을 해달라는 의도"라며 "과거 것까지 들춰내면 교과부 고위직까지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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