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부정부패를 질타하며 삼성그룹에 이례적인 숙정(肅正)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회장은 엊그제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 삼성 내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고 언론에 공개했다. 어제도 삼성 전체의 부정부패를 언급했다. "회사가 약해지면 경영에 복귀할 것"이라던 그가 경영 복귀 1년 2개월여 만에 꺼내든 아젠다는 결국 글로벌 삼성의 대대적인 자정(自淨)이 된 셈이다.
이 회장이 숙정론을 꺼낸 계기는 삼성테크윈에 대한 경영진단 결과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업체인 삼성테크윈은 주력 생산품인 K-9 자주포의 오작동과 고장으로 물의를 빚어 지난 3월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이 시작됐다. 그룹 미래전략실 요원이 120명이나 투입된 가공할 만한 작업이었다고 한다. 이 결과 테크윈 임직원들의 '부하 직원을 끌어들인 부정' 등의 혐의가 포착됐고, 이는 테크윈 CEO가 전격 경질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이 회장이 테크윈 한 곳만을 보고 그룹을 뒤흔드는 숙정론을 즉흥적으로 내놓았을 리는 만무하다. 일각에선 경영권 승계 과정을 겨냥해 큰 폭의 인적 쇄신을 의도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글로벌 삼성의 밑거름이 된 1993년의 '신경영'을 비롯해 이 회장의 아젠다가 고비마다 우리 사회의 요구에도 부응해온 만큼 이번 숙정론도 같은 맥락에서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밖으론 G20를 이끄는 글로벌 강국을 지향하면서도 안으론 감사원까지 부정에 휘말릴 정도로 무너진 우리의 국가기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명박 정권의 철학 빈곤은 굵직굵직한 정책과 인사에서 끝없는 실책을 낳고 있고, 청와대가 우습게 보이니 관료들은 제멋대로 들썩이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 부정부패는 정치권과 관료, 기업과 금융권을 돌아 프로축구까지 오염시킬 정도에 이른 게 오늘이다. 그나마 삼성 조직은 이 회장에게 회심의 숙정론을 관철시킬 수 있을 만큼 건재하다. 그런데 나라를 이끄는 이명박 대통령에겐 그런 조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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