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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인사이드/ 남아메리카 좌파 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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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인사이드/ 남아메리카 좌파 득세

입력
2011.06.0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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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루까지 분홍 물결…남미 실용·강성 좌파의 힘

남미의 좌파 바람이 심상치 않다. 5일 치러진 페루 대선 결선투표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오얀타 우말라 후보가 승리를 거두면서 남미에선 칠레 콜롬비아 수리남 정도를 빼고는 모두 좌파 대통령이 집권하게 됐다. 2000년대 이후 이 지역을 휩쓰는 21세기형 사회주의, 일명 ‘분홍 물결(pink tide)’의 힘이 재확인된 것이다. 신자유주의 흐름에 반대하면서도 시장 친화 실용주의로 무장한 좌파가 득세하자 남미를 자신의 뒷마당 정도로 여겼던 미국이 가장 불편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미의 좌파가 살아 남는 법

남미 좌파는 뿌리가 깊다. 1930년대 좌파 등장 이후 해방신학, 종속이론 등이 이 지역에서 출발했고, 민중주의 포퓰리즘(populism) 역시 남미 국가를 빼놓곤 이야기할 수 없다. 70, 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서는 무장 게릴라 투쟁, 사회주의 붕괴 후 합법 정당 건설까지 변신도 숨가빴다. 그리고 1998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2002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집권으로 결정적 전기를 맞게 됐다.

남미의 집권 좌파는 자원 국유화 같은 사회주의 정책을 중심으로 토착 원주민, 서민, 빈민층의 구미에 맞는 정책들을 내놓았다. 동시에 정치적 다원주의를 인정하고 세계화 흐름에도 적응했다. 1990년대 후반 우파 정권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실패와 이에 따른 경제난은 좌파 정당의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됐다.

차베스와 룰라 집권 후 중국 등지에서 이 지역의 광물, 식량 자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남미 좌파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은 고공 행진을 거듭했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남미에선 좌파 정권이 잇따라 집권하고, 브라질에선 좌파 노동자당(PT)이 10년 동안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는 등 좌파 성공시대가 열린 것이다.

득세하는 남미 실용ㆍ강성좌파

남미의 좌파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승리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페르난도 루고 파라과이 대통령 등은 실용주의 성향이 강한 좌파로 분류된다. 반면 차베스 대통령을 비롯해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등 자원 국유화를 통한 사회주의를 추진하는 강성 좌파도 있다.

루고 대통령이 2008년 대선 당시 “차베스와 룰라의 중간 노선을 따르겠다”고 밝혔듯 남미 좌파의 대세는 실용과 강성의 조합이다. 일부에선 원칙을 강조하는 ‘에스프레소 좌파’가 중도로 수렴한 ‘카푸치노 좌파’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우말라 페루 대통령 당선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2006년 대선에도 출마했었다. 당시엔 에너지 자원 국유화 등 차베스의 노선과 유사했다. 결과는 패배.

그는 5년을 절치부심한 끝에 이번엔 차베스식 사회주의 색깔을 탈색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의 정치 경제 모델을 페루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외국 광산업체에 대한 초과 이득세 부과 같은 공약을 또 내세우긴 했지만 현 우파 정권의 정책 노선을 급격하게 바꾸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브라질의 PT가 추구하는 중도좌파 노선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 덕분에 우말라는 우파의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를 3% 포인트 차이로 누를 수 있었다.

뒷마당 남미 이탈로 곤혹스러운 미국

남미 좌파의 득세로 가장 불편해진 건 미국이다. 페루 대선 때에도 미국은 우말라보다 후지모리를 선호했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리마 주재 미국대사관은 우말라의 출마를 강력하게 반대했다”며 “우말라가 차베스의 동맹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은 지역 현안은 물론 중동문제 등 국제사회 이슈에서도 미국의 주도에 종종 반기를 들고 있다. 차베스의 반미 활동, 브라질이 이란 제재를 거부한 게 대표 사례다. 또 그나마 있는 우파 정권인 콜롬비아조차 베네수엘라와 관계를 개선하면서 미국과 거리 두기를 할 정도라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게다가 브라질 주도로 유럽연합(EU)과 유사한 남미국가연합 체제를 추진하면서 이들의 독자노선은 한층 강화되는 분위기다. 19세기 초 남미 국가들의 독립을 이끌었던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의 꿈이 21세기 들어 현실화하는 양상이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 브라질 좌파는 어떻게 성공했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퇴임 직전 무려 8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금도 브라질 국민의 지지는 절대적이다. 제 때 수술받을 돈이 없어 첫 부인과 뱃속의 아기까지 잃어야 했던 노동운동가 출신의 좌파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이처럼 인기가 많은 것은 무엇보다 서민의 삶을 크게 개선했기 때문이다.

브라질 국립지리통계원(IBGE)과 재무부에 따르면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2003년 1.1%에 머물렀던 브라질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7.6%까지 뛰어 올랐다. 특히 2004~2009년 연 평균 134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신규 고용은 무려 1,538만4,000여개나 된다. 2003년과 2009년 사이 최저 임금 인상폭은 무려 63%에 이른다. 한 때 연 2,300%를 기록했던 ‘망국병’ 물가상승률을 5% 안팎으로 잡은 것도 그다. 중산층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자동차 증가와 이로 인한 교통정체이다. 브라질 자동차산업협회(Anfavea)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은 351만대로 세계 4위를 차지했고, 몇 년 안에 일본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룰라 정권은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수용하는 한편 노동·사회보장·세제·농지 등 4대 개혁을 통해 사회양극화를 해소한 실용주의적 중도노선을 취했고, 이것이 실효를 거두었다. 룰라 이전의 우파정권은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랐다가 90년대말~2000년대초 침체를 거치며 극심한 사회불평등과 실업을 남겼다. 또 2003년 이후 세계경제의 호조로 원유와 원자재가가 상승하면서 국부 창출의 원동력이 됐다. 심해 유전 개발이 잇따르고, 생산량이 많은 철광석과 구리 등의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다음 월드컵(2014년)과 올림픽(2016년)도 모두 브라질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미래 전망도 밝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브라질이 GDP 2조1,930억달러를 기록, 세계 7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1492년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최고의 호황기인 ‘500년만의 황금기의 도래’라는 기대가 높다.

브라질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최근에는 미국을 배제한 채 브라질을 중심으로 33개국이 참여하는 국제기구인 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논의까지 활발하다. 이는 2003년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탄생한 12개국의 남미국가연합을 확대한 것이다. 경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는 남미가 앞으론 국제 무대에서 미국과 정치 대결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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