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민주항쟁의 달이다. 24년 전 오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ㆍ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개최하여 전두환 독재정권을 향해 온 국민의 뜻을 강하게 전달했다. 저녁 6시를 기해 택시기사들은 일제히 경적을 울렸고, 시민들은 흰 손수건을 흔들어 화답했다. 여고생들은 항쟁 참여자들에게 물과 도시락을 날랐다. 결국 20일간의 항쟁으로 6.29 선언을 이끌어내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성장
6월 민주항쟁은 우리나라 민주화를 새로운 단계로 진입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제도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는 데 우선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넥타이 부대'의 등장이었다. 명동 등 서울 도심에서 30ㆍ 40대 직장인들이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치는 모습은 과거 어떠한 민주 시민운동에서도 볼 수 없던 현상이었다. 새로운 집단이 형성되고 그 집단이 주요한 정치행위자로 등장함에 따라 역사는 발전한다.
4ㆍ19 혁명과 그 이후 민주화와 사회 변혁을 위한 시민운동은 학생들이 주도했고 그에 따른 희생도 컸다. 민주운동뿐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 등 여러 사회 계층의 이익까지도 대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대학생들만이 자유롭게 사유(思惟)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집단이 출현했다. 넥타이 부대는 행동하는 중산층을 상징한다. 그들의 집단적 행동은 더 이상 참고 넘어갈 수 없는 한계점에 달했다는 것을 뜻한다. 동시에 그들이 향유하고 있는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 풍요를 어느 정도 희생할 수 있다는 각오의 표출이기도 하다.
넥타이 부대의 행동은 오늘도 계속된다. 지난 4.27 재ㆍ보궐 선거의 결과는 넥타이 부대의 냉엄한 심판이었다. G20 정상회담의 화려함에 묻혀버린 민생의 어려움을 제대로 살펴 챙기라는, 이명박 정부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여야 정치권은 넥타이 부대의 향배가 내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의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그 본질과 진화의 양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넥타이 부대를 단순히 화이트칼라 직장인으로 전체 선거인의 2~3%에 해당하는 집단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또한 현재의 넥타이 부대가 1987년의 넥타이 부대와 동일하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지난 20여 년 간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서 넥타이 부대도 성장하고 분화했다. 길거리로 나선 소수의 화이트칼라 직장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허리를 담당하는 사회 세력으로 성장했다. 여전히 행동하는 중산층의 상징으로 민주와 민생의 가치를 전수 받으면서, 동시에 삶 속에서 느끼는 각자의 사고와 정치적 요구는 다양화하고 있다. 한편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막강한 정보력을 갖추고 있어 기존의 여론 주도층을 대체할 수 있는 힘도 지니게 되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의 파급 효과는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민심을 행동으로 옮길 책무
민주 정치의 공고화를 위해 넥타이 부대의 부활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의 목소리는 멀어졌지만, 아직도 민주와 민생의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거지고 있는 각종 불법과 비리, 부실저축은행을 둘러싼 불법 로비와 부패의 양상을 바라보며 국민들은 비탄에 빠져있다.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이 국민의 신망을 잃고 있는 이즈음 처절한 성찰로 우리 사회 공동체의 모순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집단이 필요하다. 민심의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회 집단이 절실하다.
사회적 힘을 지닌 집단이 사회적 책무를 져야 한다면, 넥타이 부대가 다시 한번 짐을 져야 하지 않을까. 6월 민주항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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