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개신교는 두 번의 양적인 대성장이 있었다. 첫 번째는 1900년대의 첫 10년으로, 1901년부터 1910년까지 신자가 무려 659.1%나 증가했다. 두 번째는 박정희 시대인 60, 70년대다. 이 시기 신자 증가율은 60년부터 69년까지 206.9%, 69년부터 80년까지 124.9%를 기록했다(기독교대연감ㆍ한국종교연감 통계).
박정희 시대 한국 개신교의 급성장은 1900년대만큼 가파르진 않지만, 이 또한 세계 교회가 놀랄 만한 현상이다. 65~80년 개신교 신자 증가율은 221.2%로 같은 시기 천주교 121.7%, 불교 170.9% 등 다른 종교의 성장세를 압도한다. 왜 그렇게 됐을까.
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사회연구소가 7일 연 세미나는 이 주제를 다뤘다. 발제를 한 최동규 서울신학대 교수는 박정희 시대 교회 성장은 당시 한국 사회를 지배한 개발과 발전의 논리와 그에 따른 근대적 가치를 적극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경제적 발전을 추구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양적 성장과 성공은 기독교계의 핵심 가치가 됐고, 교인들은 물질적 번영을 축복의 증거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당시 독재와 냉전에 따른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불안이 사람들을 교회에 의지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이 시기에 특히 도시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대규모 이농의 결과라고 봤다. 농촌에서 뿌리 뽑혀 도시로 온 사람들이 교회에서 대안적 공동체를 찾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얼굴이 시대의 초상과 겹치는 대목이다.
이 같은 외부적 요인 외에 급성장을 이끈 교회 내부의 동력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는 교회 목사들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꼽았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방식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하지만 양적 급성장에 비해 질적 성장은 부진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성장지상주의와 맞물린 개교회 이기주의, 사회보다는 개인에 집중하는 신앙 행태 등 오늘날까지 한국 교회의 부정적 양상으로 지적되는 현상들이 이때부터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굳어졌다고 지적했다. 또한 근대사회의 개인주의적 가치가 마치 기독교 신앙에 사회성과 역사성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인식되면서 기독교가 일제강점기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끼쳤던 모습은 점차 약해졌다고 분석했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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