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 청소, 전단 배포, 치킨 배달, 강아지 사료공장 등등 온갖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는 정재영(26)씨는 고졸이다. 대학진학률 80%에 육박하는 대한민국에서 정씨는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대학을 다니지 못했다. 아니 쫓겨났다.
사회복지사를 꿈꾸던 정씨는 2003년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파출부를 하는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형편에 한 학기 28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은 큰 부담이었다. 1년은 학자금대출로 겨우 넘겼지만 2학년 1학기엔 등록금 납부를 미루다 중간고사까지 치른 상태에서 결국 미등록 제적 통보를 받았다.
정씨는 애걸했지만 학교 측은 휴학신청 기간도 지나 제적 외엔 방법이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선택의 여지 없이 군대를 다녀왔지만 정씨는 2년간 밀린 학자금대출 이자 500만원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추락했다. 그는 "280만원이 없다고 매몰차게 쫓아낸 학교를 생각하면 지금도 원망스럽다"며 "학교로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지만 당장 쓸 생활비에 대출 이자 갚는 것도 빠듯해 2배 가까이 오른 등록금 마련은 언감생심"이라고 울먹였다.
정씨처럼 극단적으로 학업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지만 대다수 대학생들이 비싼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해 신음하고 있다.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학업은 뒷전이고 오히려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더 쏟기 일쑤다.
올해 서울 모 사립대 인문학부에 입학한 김민지(20ㆍ가명)씨는 등록금 때문에 요즘 남모를 속앓이를 하고 있다. 같은 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아버지 덕에 등록금 전액을 면제 받고 있는 터라 등록금에 대한 걱정은 없지만 자신과 달리 힘들어하는 주위 친구들을 보면 괜한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다. 김씨는 "과외다 뭐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신 없는 친구들을 보면 안쓰럽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겪은 등록금 고통의 굴레는 졸업 후에도 이어진다. 학자금대출로 등록금을 충당한 학생들은 빚 갚기에 바빠 여유 있는 미래를 계획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그야말로 '빚' 나는 졸업장이다.
올해 서울대를 졸업한 김현근(24)씨 앞으로는 1,200만원의 빚이 있다. 자신은 국립대를 다녀 비교적 부담이 덜했지만 동생이 지방 사립대에 입학하면서 둘이 합쳐 내야 할 1년 등록금만 1,000만원이 훌쩍 넘었다. 김씨는 학창시절 4학기 동안 대출받은 돈을 갚기 위해 매달 14만원의 이자를 내고 있다. 원금까지 상환하는 데만 꼬박 10년이 걸린다.
김씨는 "졸업까지 해서 부모님께 용돈 달라 손 벌릴 순 없고 또 빨리 빚을 청산하고 싶은 마음에 월 120만원의 파트타임 학원강사 일을 하고 있다"며 "등록금이야말로 대학생들이 내일을 꿈꾸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족쇄"라고 말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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