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건강하던 강모(71)씨는 지난 해 4월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 쓰러지고 말았다. 119구급대로 급히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복부 대동맥류(瘤) 파열'이었다. 수술이 힘들고, 95%가 사망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자식들이 수술이라도 해달라고 사정하자 응급실 담당의는 강남세브란스병원 대동맥클리닉을 소개했다. 송씨는 일요일 새벽 5시30분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도착 20여 분만에 수술대에 오른 송씨는 2주 후 퇴원했다. 국내 유일하게 24시간 교수 응급진료시스템을 갖춘 대동맥클리닉 송석원 교수에게서 대동맥질환을 알아보았다.
-대동맥질환으로 어떤 게 있나.
"대동맥은 심장에서 나오는 피를 온 몸에 내보내는 가장 큰 혈관으로 우리 몸의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다. 대동맥 질환으로는 대동맥이 정상보다 1.5배 이상 부풀어 올라 풍선처럼 터지는 대동맥류와 고혈압 등으로 인해 대동맥 혈관이 찢어지는 대동맥박리증이 있다. 대동맥박리증은 한 시간을 넘길 때마다 사망률이 1%씩 늘고, 이틀 후에는 환자 절반이 사망한다. 대동맥류도 출혈이 심하면 쇼크로 즉사할 수 있다. 그래서 재빨리 수술해야 살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환자가 병원에 늦게 후송되고 수술할 병원을 찾다가 사망한다."
-왜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이 적은가.
"수술할 수 있는 전문 의료진과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동맥 관련 응급수술할 때 적어도 2명 이상의 흉부외과 의사와 전문 간호사, 수술 도중 끊어진 대동맥을 대신해 심장의 피를 몸 밖으로 돌려 다시 몸에 넣어주는 심폐 체외순환사 등 수술팀과 이를 뒷받침하는 마취과와 심장내과, 영상의학과 등과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전문 의료팀을 갖춘 곳은 국내에 손꼽을 정도다. 게다가 밤이나 휴일에는 응급수술이 더 힘들다. 지난 해 우리 대동맥클리닉에서 수술한 대동맥질환 수술환자 100명 중 69명은 지방 환자였다. 후송 중에 만에 하나 동맥이 파열돼 출혈이 커졌다면 이 환자는 바로 사망했을 것이다."
-대동맥질환은 어떻게 치료하나.
"기본적으로 응급수술을 빨리 해야 한다. 우리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는 2008년부터 24시간 대동맥과 혈관질환 흉부외과 교수 응급진료시스템을 갖춘 대동맥클리닉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었다. 환자 도착 후 다른 병원에서는 2~3시간 걸리는 수술 준비시간을 30분 이내로 줄였다. 수술은 손상된 대동맥을 잘라내고 인조혈관으로 연결하는 '혈관대체술'을 시행한다. 전에는 복부대동맥류를 수술하면 25㎝ 정도 수술흉터가 배에 남았다. 최근 복강경시술로 대체돼 0.5㎝ 정도의 작은 흉터 한 개와 배꼽 주위에 6㎝의 흉터만 남는다. 수술 후 회복도 빠르다. 또한, 대동맥이 작게 부풀어 오른 복부동맥류는 '스텐트 그래프트'를 넣어 파열을 미리 막는다. 이런 24시간 응급수술시스템과 최신 수술법으로 20~30%의 사망률을 보이는 급성 대동맥박리증도 우리 병원에서는 97%가 수술에 성공했다."
-대동맥질환 수술은 어느 정도 이뤄지나.
"국내 대동맥질환 수술은 1년에 800건 정도 시행된다(대한흉부외과학회 자료). 이 중 우리 병원에서 100건이 이뤄진다. 대동맥류는 50대 초반부터 급증하고 있다. 60세의 5% 정도가 환자로 추정된다. 대동맥박리증은 고혈압과 동맥경화증 환자에게 많이 나타난다. 2008~2010년 3년 간 강남세브란스병원 대동맥클리닉에서 수술한 환자 중 60대 이상이 63%나 된다. 그러나 40~50대 장년층도 27%나 되므로 혈압 질환을 앓는다면 혈관건강을 점검하는 게 좋다. 또한, 술ㆍ담배를 많이 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남성은 여성보다 3배나 많이 발병한다."
-그런데 이처럼 위험한 대동맥질환 예방법은 없나.
"무엇보다 심장이나 뇌 질환처럼 혈관건강을 저해하는 고혈압을 예방해야 한다. 또한 혈관 내부를 좁히고 굳게 하는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콜레스테롤 섭취도 줄여야 한다. 흡연은 혈관 손상과 노화를 촉진하므로 삼가야 한다. 그러므로 고혈압과 동맥경화증이 있거나 오래 흡연하거나, 혈관질환 가족력이 있으면 정기 검진과 규칙적인 운동, 저칼로리 식사를 해야 한다."
-어떤 증상이 나타날 때 병원을 찾아야 하나.
"최근 건강검진 확산으로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대동맥질환 발견율이 높아졌다. 이렇게 운 좋은 조기 진단자 외에는 대동맥이 부풀어도(복부 대동맥류) 별로 아프지 않아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6㎝ 이상 부풀면 파열 위험이 높다. 따라서 심장 박동소리가 커지거나 복통이 심하고 식은 땀 나면 즉시 병貶?가야 한다. 급성 대동맥 박리증이라면 갑자기 생기는 가슴통증이나 복통 등 평생 한번도 겪지 못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주 증상이다."
-국내 유일의 24시간 대동맥클리닉을 이끌면서 느낀 점은.
"턱없이 부족한 흉부외과 전문 의료진이 365일 24시간을 근무 하다 보니 사생활이 거의 없다. 그러나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가 소생해 병실을 나설 때 느끼는 희열로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의료진 몇 명의 헌신만으로는 이런 진료시스템이 유지하기 어려운 만큼 '흉부외과와 심장ㆍ혈관질환 진료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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